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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 다랑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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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남해도 끝자락 바다와 마주한 가천 '다랭이 마을'엔 봄 기운이 한껏 올랐다. '한국의 마추픽추'인 듯 산비탈에 곧추 서 아득히 층을 이룬 다랑논엔 겨우내 꿋꿋이 자란 마늘이 푸름을 토해 놓는다.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에 쪽빛 바다가 일렁이자 푸른 마늘마저 살랑이니 아지랑이 피듯 어찔하다.

"제가 어릴 적에도 점심 요량으로 고구마 몇 개 들고 논으로 가져가면, 할아버지는 괭이로 흙을 파서 논을 만들었습니더. 큰 돌은 석축으로 쌓고 작은 돌은 굄돌로 썼지예. 흙을 깔아 물을 대면 돌 사이에 흙이 스며들면서 굳어집니더. 이렇게 만든 논에도 죄다 이름이 있지예. 아주 곧추선 가파른 경사면에 있다고 된까꼬막, 실뱀처럼 좁고 길다고 싱배미, 돌이 팍 튀어나왔다고 돌팍배미입니더. 이놈들 쉬는 날이 1년 중 5일 남짓인데 그 덕에 밥술 뜨고 살아왔지예."

외줄 타듯 깎아지른 논둑길 걸어 나온 동네 이장의 마을 자랑에 신명이 묻어난다.

"우리 마을이 농어촌 체험마을입니더. 한 뼘 땅뙈기라도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온 조상들의 생명력을 그대로 지켜 왔습니더. 어른들에겐 추억을 되새겨 주고, 애들에겐 새로운 추억을 심어 줄낍니더. 일단 한번 오이소."

빛이 부드러운 날은 깔끔한 질감의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대비가 약해 힘없는 사진을 얻기 십상이다. 등고선처럼 얽히고설킨 다랑논의 전경을 앵글에 담으면 선의 대비가 약해 어지러운 사진이 된다. 망원렌즈를 이용하거나 다랑논 속으로 접근하여 단순하게 프레밍을 하면 논둑과 마늘의 질감이 대비되는 명료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Canon EOS-1Ds MarkII 24-105mm f16 1/30초 Iso 10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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