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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들에게 차마…” 밀양 화재참사 희생자 남편의 절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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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밀양 희윤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이희정씨 빈소에서 남편 문씨(왼쪽)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씨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상복을 입지 않다가 27일 오후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송봉근 기자

27일 밀양 희윤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이희정씨 빈소에서 남편 문씨(왼쪽)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씨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상복을 입지 않다가 27일 오후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밀양의 한 장례식장. 화환이 놓이고 조문객이 오가는 옆 빈소와 다르게 상복을 갈아입지 않은 가족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이번 화재로 숨진 희생자 37명 가운데 가장 젊은 이희정(35·여)씨 빈소다.

다리 다쳐 2층 세종병원에 입원했던 35세 주부 #10년 넘게 일하며 뇌병변 아들 곁에 두고 치료 #결혼 15년차 남편 다정했던 사진 보여주며 통곡 #유족 “희생자 많은 2층 구조 왜 늦었나” 토로도

이씨는 지난해 12월 초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세종병원이 물리치료를 잘한다고 해 지난해 말 옮겼다. 이씨는 사망자가 많이 나온 2층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전화 한 통 못하고 떠났다. 오전 9시가 다 돼서야 가족 가운데 가장 먼저 남편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씨의 남편 문모(47)씨의 두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갰다. 그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다가도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괴로워하며 얼굴을 감싸 쥐기도 했다. “스물두 살에 결혼해 힘들어도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아아.” 옆에 있던 이씨의 어머니도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문씨와 이씨는 12살 차이의 띠동갑이다. 14년 전 결혼했다. 문씨는 지인 소개로 만난 이씨를 보는 순간 귀여운 외모에 반해 몇 달을 구애했다고 한다. 아내와의 첫 만남을 얘기하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문씨 얼굴에 언뜻 미소가 묻어났다.

문씨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서로 볼을 대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행복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26일 저녁 이희정씨의 빈소 앞. 찾는 이 없이 썰렁한 모습이다. 최은경 기자

26일 저녁 이희정씨의 빈소 앞. 찾는 이 없이 썰렁한 모습이다. 최은경 기자

부부에게는 아들이 있다. 올해 14세로 중학생이 된다. 엄마는 이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부부에게 이 졸업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군이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를 앓아서다. 행동이 불안정해 지속적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이었다.

장애인 시설에 맡기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이씨는 10년 넘게 식당에서 일하며 아들을 곁에 두고 통원치료를 해왔다. 지인들은 “일하랴 아들 돌보랴 이씨가 힘든 일상을 보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쾌활한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2년 전쯤 교육을 위해 특수 시설에 아들을 맡겼다. 엄마에게 유난히 매달리던 아들은 27일 아침에야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이씨 어머니는 “손자 상태가 걱정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26일 밀양 화재 사고로 한 순간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어느 희생자의 빈소. [뉴시스]

26일 밀양 화재 사고로 한 순간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어느 희생자의 빈소. [뉴시스]

이씨가 입원한 뒤로 세 식구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사고가 난 세종병원에는 보조 침대가 없어 보호자가 머무르기 힘들다. 주말이 되면 입원한 이씨가 외출해 남편,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말 외출은 일주일에 세 번 서울과 밀양을 오가며 화물차를 운전하는 문씨에게 힘든 일의 피로를 잊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문씨는 그런 주말을 하루 앞두고 사고를 당해 더욱 비통하다고 했다.

27일 소식을 듣고 지인들이 드문드문 빈소를 찾았지만 문씨는 아직 장례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사체검안서가 나오지 않아 입관을 하지 못한다. 유가족들은 “세종병원 2층에 환자가 많았는데 왜 옆 건물인 요양병원과 세종병원 3·5층 구조에만 집중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씨는 “아내를 다시 본다면 오래오래 같이 있자고 말하고 싶다”며 다시 울먹였다.

밀양=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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