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축구의 봄에 돌하르방도 싱긋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유니폼을 입은 돌하르방 뒤에서 서귀포시 자원봉사센터 소속 회원들이 "제주 유나이티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뒤로 제주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서귀포=정영재 기자

한라산 정상은 하얗게 잔설을 이고 있지만 서귀포 시내에는 개나리와 유채꽃이 한창이다. 제주에 '축구의 봄'이 왔다. 부천에서 연고를 옮긴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가 15일 오후 8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삼성과 개막 경기를 했다. '제주도 프로축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주월드컵경기장 앞에 도열해 있는 커다란 돌하르방들은 제주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스'로 변신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이창용(50)씨는 "제주도에서도 프로축구를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난다. 축구단이 제주도민에게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에는 서귀포시 명예시민인 '국민가수' 조용필이 자신의 히트곡 '여행을 떠나요'를 제주도 방언으로 개사한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퍼런 태역에 사슴뿔도랑 하간디 몬딱 저스멍 나녕 놀쌔게 도루곡 꼴망을 똘르라." 거의 외국어 수준이다. '파란 잔디에 사슴 뿔 달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며 날쌔게 달려 골망을 뚫어라'는 뜻이란다.

제주 유나이티드 서포터스인 '제우스(JEUS.제주 유나이티드 서포터스 클럽)'는 'Forever 헤르메스(부천 서포터스), Again 헤르메스'라는 걸개를 걸었고, 또 다른 서포터스인 '풍백(風伯)'은 '부천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걸개로 팀을 잃어버린 부천 축구팬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서귀포시 3개 고교생 500여 명은 교복을 이용한 매스게임으로 'JEJU' '力!' 등의 글자를 만들어 내 박수를 받았다. 3만5000개의 관중석은 3만2517명의 축구팬으로 채워졌다.

제주 선수들은 '사력을 다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전반은 다소 밀렸지만 후반에는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파도타기 응원이 시작됐고, 관중은 파도가 끊어지지 않자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경기는 아쉽게도 양 팀이 득점 없이 마쳤다. 그렇지만 제주 도민들은 '응원할 내 팀이 생겼다'는 즐거움을 안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 경기장'이란 찬사를 받은 제주월드컵경기장도 '천덕꾸러기'에서 '화려한 백조'로 비상할 기회를 잡았다. 이 경기장은 한라산을 바라보고 태평양을 굽어보는 천혜의 입지와 범선의 돛을 연상시키는 지붕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축구 경기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 대신 스포츠.문화 복합공간으로 변신을 시도, 지난해 1억원 흑자를 냈다. 이제 본연의 모습인 프로축구까지 열리게 돼 '날개'를 달게 됐다.

제주 출신인 프로축구연맹 양태오 운영차장은 "제주도 50여만 인구 중 서귀포시(8만3000명)를 뺀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경기장을 찾느냐가 중요하다. 주중 야간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교통편을 마련해 주는 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귀포=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