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학 '소수계 우대'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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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그간 미국에선 흑인.아시아계를 비롯한 소수민족이거나 여성이면 장학금을 타기 쉬웠다. 소수민족 여성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1960년대부터 시행해 온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대학들이 최근 소수민족이나 여성을 위해 마련된 특별 장학금을 백인 남학생에게도 주기 시작했다고 14일 보도했다. 소수계 우대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월 뉴욕주 뉴욕주립대(SUNY)에 이어 지난달에는 일리노이주 서든 일리노이 대학이 소수민족이나 여성을 위해 마련된 장학금의 수혜 대상을 백인 남성에까지 확대했다. 심지어 지난해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의 경우 이 대학 최초의 흑인 학장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장학금에서 흑인이란 자격 요건을 없앴다. 그간 이 장학금 수혜자는 전원이 흑인이었으나 올해에는 전체 42명 중 12명의 백인이 포함됐다. 수백만 달러 규모의 소수계 전용 장학금이 줄줄이 본래 설립 취지를 잃고 일반 장학금으로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입학 사정 시 조건 없는 소수계 우대는 위헌"이라고 선언한 미 연방대법원 판결 때문에 나타났다. 97년 대법원은 미시간대 학부와 법과대학원에 응시했다 떨어진 학생 세 명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법과대학원에 대해선 "일정 요건을 갖춘 소수민족 응시생들만 우대했기 때문에 인종적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합헌(합헌 6 대 위헌 3)"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학부에 대해선 "소수계 학생에게 무조건 가산점을 주는 정책은 위헌(5 대 4)"이라고 결정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미 행정부는 미시간대 학부 판결에 근거,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특혜를 없애라고 대학들을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백인에 대한 역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장학금에 대한 인종 제한 규정을 없애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기회 평등 센터'라는 단체는 3년 전부터 200개 대학에 소수계 전용 장학금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는 문건을 발송, 이 중 150개 대학이 관련 규칙을 수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 사태를 우려한 대학들이 고심 끝에 소수계 우대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와 관련, 소수계 우대 옹호론자들은 "앞으로 경제적 약자인 소수민족의 교육 기회가 줄어들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미국 내 대학 입시전형과 장학금 지급 대상 결정 과정에서 흑인.남미계.아시아계. 인디언을 비롯한 소수민족과 여성들에게 가산점을 줘 우대하는 제도다. 소수민족 출신과 여성 인재를 육성함으로써 인종.성별 간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대에 처음 나왔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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