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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대」의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립중앙박물관 발굴단이 경남 의창군 다호리 고분에서 파낸 유물들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 고대사의 중요부분인 가야의 역사를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 같다.
논배미를 따라 산재한 고분군 중에서 목관이 발견된 1호 분에서만 칠기, 철기, 청동기로 된 각종 생활용구와 농기구, 무기류가 26종 69점이나 쏟아져 나와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알던 삼한시대 우리 조상들의 문화상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참나무로 만든 통나무목관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것이고 고배 류를 비롯한 칠기들과 철기들이 그 시대에 썼으리라고는 거의 생각도 못하던 것이라서 학계의 충격은 크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백제 무령왕 능이나 신라 천마총 발굴을 능가하는 고고학적 발굴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는 지금까지 부족사회생활 단계에서 낙후한 생활을 했으리라고 믿어지던 BC1세기에 우리 조상들이 뛰어난 문명국가를 이루고 멋진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증거를 의창의 유물들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인 삼한시대에는 소규모의 부족국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고분의 유물들은 그런 소규모 국가가 만들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고급 문화수준의 산물이다.
칠기·철기들은 고도의 기술을 축적한 기술자들이 있는 사회가 아니고는 만들 수 없으며 그 같은 기술을 유지하는 사회체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뿐더러 철제농기구로 영위되는 농업은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가 축적된 사회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물 중에는 붓도 다섯 자루나 나타나 유물의 주인공이 문자생활을 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철기와 문자를 쓰는 사회는 국가단계의 문명사회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론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학자들이 우리의 고대국가 형성시기를 2∼3세기로 내려 잡던 타성은 당연히 고쳐져야 한다.
역사학적으로 고대국가 발상의 문제를 재검토해야 할 뿐 아니라 삼한과 가야의 역사적 의미가 재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이후 신라·백제·고구려의 3국 중심으로만 한정했던 역사해석에도 새로운 반성이 불가피하다.
의창고분의 유물들은 우리 역사의 잃어버렸던 한 시대, 한 사회를 새로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우리 고대사 연구와 해석의 시야를 코페르니쿠스 적으로 전회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단군을 비롯한 고조선 문체나 우리의 역사에서 망실되고 있는 발해 등 대륙 부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의창고분발굴에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기울일 부분이 있다.
그것은 문화재 발굴과 보전문제다.
이번에 나온 귀중한 유물들이 사실은 도굴꾼들이 거쳐간 고분군의하나에서 나온 점을 되새기게 한다. 도굴꾼들의 무지스런 약탈에서 이나마 건질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다행스럽다.
도굴방지와 함께 남은 고분들의 철저한 조사작업도 아쉽다. 이번 발굴은 다행히 민간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지만 국가적 지원 없이 몇 사람의 조사원이 인부를 동원해 하는 작업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발굴한 유물의 보존이다. 보존과학의 충분한 확보 없이 노출된 유물은 손상위험이 크다.
문화재 당국과 학계의 분발을 촉구하며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우리 역사와 미래의 삶에 의미를 더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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