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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권 침해” vs “안전이 우선” … 서울 곳곳 육교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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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육교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 [사진 신영동 주민공동대책위원회]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육교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 [사진 신영동 주민공동대책위원회]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영동 서울 세검정초등학교 앞. 5차선 도로 양 옆에 ‘무단횡단 금지’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존 세검보도육교를 철거하고 새 육교를 짓는 현장이다. 하지만 길 옆에 쌓여 있는 공사 자재 위엔 눈이 소복했다. 현장소장 김갑성(60)씨는 “3월 완공이 목표였지만 마을 사람들 의견이 엇갈려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인근 ‘철거·설치’ 주민 대립 #보행권 강조되며 사라지는 추세 #전문가 “디자인 보완 등 절충을”

서울시 곳곳에서 ‘육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낡은 육교를 그냥 철거하자는 주장과 다시 짓자는 주장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내 육교는 ‘보행권’이 강조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2000년 248개에서 2016년 162개로 줄었다. 시는 주민투표 등을 거쳐 육교 철거 및 재설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좀처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곳들이 적지 않다.

갈등이 특히 심한 곳은 대개 학교 인근이다.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이 육교 설치에 찬성하고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철거를 주장한다. 학교 앞 육교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평창동 서울예고의 한 교사는 “최근에도 학생들이 육교 밑으로 무단횡단하다가 사고가 났다. 보행권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영동 육교 인근 상인은 “육교가 없어지니 가게 간판이 잘 보이더라. 조망권이 재산권으로 인정받는 추세아니냐”고 주장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3동 금옥여고 앞 육교도 철거가 예정돼 있었지만 두 번에 걸친 주민투표까지 가는 끝에 지난해 6월 허물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육교 주변에 학교가 6개가 있다. 자녀를 둔 학부모가 많아 노후화된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는 쪽으로 절충안을 잡았다”고 말했다. 학부모 요구에 따라 없던 육교가 새로 생기기도 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서는 신도시 계획에 따라 8차로인 통일로 200m 사이에 횡단보도를 4개나 설치했다. 하지만 인근 2개 학교 학부모들이 ‘100% 안전’을 요구해 수십억원을 들여 육교를 지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육교 철골 구조를 얇게 해 조망권을 높이고 디자인을 주변에 어울리는 쪽으로 가다듬는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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