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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엇갈린 노사 다리놓는 '조정 전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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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사진=안성식 기자]

회사에서 별 다른 이유 없이 해고됐을 때. 임금을 주지 못하던 회사가 결국 문을 닫았을 때.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땀 흘려 일한 직장인에게 몸바쳐 일한 대가를 못받을 때만큼 억울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또 근로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 회사가 곤경에 빠졌을 경우. 이럴 때 도와주는 사람이 공인노무사다.

노동 분쟁의 한복판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양측을 대리해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을 한다. 노동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양측의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한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30년간 재직하다 지난해부터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주 용(59)씨는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뛰면서도 적절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노무사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노무 상담활동도 하고 있다. 자영업자인 노무사의 소득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또 사용자를 주로 상대하느냐 노동자를 주로 상대하느냐에 따라 소득차이가 크다. 대기업에 특별 채용된 공인노무사의 연봉은 4000만~5000만원(현장 경력 2~3년차 기준)이다. 자격증 소유자가 아직은 적은 만큼 직업의 전망도 밝다.

노무법인 길벗의 김성중(35) 노무사는 "최근 노무사의 활동 영역은 분쟁 중재를 넘어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노무법인들은 기업의 인사.노무 시스템 전반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노무관리 체계를 진단해 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걸러낸다. 노사갈등으로 빚어지는 경영손실을 줄이도록 돕는 것이다. 2003년 개정된 공인노무사법에 따르면 노무사는 노동위원회가 수행하던 쟁의발생 전 조정기능을 대행할 수 있도록 돼있다. 물론 노사가 특정 노무사를 조정 주체로 내세우기로 합의한 경우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2007년부터 단일 사업장 안에 복수 노조 설립이 허용되면 이 같은 노무사의 기능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노무법인 나무의 강정국(35.사진 (右)) 노무사는 "노사.노노 간의 이해관계가 얽힐수록 서류상의 법률 심의가 아닌 쌍방의 의견을 탄력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분쟁 조정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사 분쟁 조정수요 급증=외환위기 이후 노동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987년 자격 시험이 도입된 이래 매년 200~300명 수준이던 응시자 숫자는 2000년 975명, 2003년 1596명, 지난해엔 2214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가 도입된 이후 노동현장의 분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신고.접수된 사례만도 98년 6만2000건에서 2004년 21만5000건으로 증가했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법적 분쟁이 늘어난 것은 99년 근로기준법이 근로자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는 등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공인노무사가 되려면=87년 노동부 주관으로 시작된 노무사 자격시험은 99년부터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대행하고 있다. 시험은 매년 있다. 1차 시험 과목은 노동법.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 법과 민법.경제학.영어다. 문제는 객관식으로 나오며 각 과목 과락(40점 이하)이 없이 평균 60점을 넘어야 합격된다. 주관식으로 치러지는 2차 시험은 노동관련 법률과 인사.노무 관리 이론과 함께 노동경제학.행정쟁송법.경영조직론 중 한 과목을 선택해 보면 된다. 3차는 구술면접이다.

노무사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서울법학원의 김용주(52) 본부장은 "다른 자격사에 비해 문제의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며 "합격자들의 준비기간은 평균 2년 이내"라고 말했다.

합격 후에는 공인회계사와 마찬가지로 노무법인 등에서 실무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습이 끝나면 노무법인에 들어가거나 개인사무소를 열 수 있다. 대기업.지방자치단체.정부기관은 현장 경력 3년 이상의 노무사를 뽑기도 한다.

글=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어느 노무사의 하루

9시 출근 … 밤샘근무 잦아

온종일 상담일정 꽉 차있어

◆노무법인 참터 고경섭 노무사

13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 서울 공덕동의 노무법인 참터의 고경섭(36.사진) 노무사의 사무실엔 불이 켜져 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파업에 참가했다 징계를 당한 근로자를 구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노동위원회 등에 제출한 수천 쪽 분량의 서류가 책꽂이를 가득 메웠다.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전보 또는 징계 처분을 받은 60여 명을 구제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고 결국 30여명에 대한 징계 취소 판정을 받아냈다. 현재 이 사건은 중앙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통상 오후9시쯤 사무실에 나오는 고씨는 출근하자마자 3명의 동료와 함께 그날의 일과를 점검한다. 이 회의가 끝나면 상담일정이 꽉 짜여 있다. 고씨는 "노동현장 가까이서 노사 당사자들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방안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 직업의 매력"이라면서 1999년 한 병역특례업체 근무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한 병역특례업체에서 일하던 이모(당시 25세)씨는 고민 끝에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야근이 잦았고 월급도 터무니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전직승인 신청을 내주겠다는 회사의 말만 믿고 회사가 요구한 대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그런데 이씨는 얼마 후 난데없이 입영통지서를 받았다고 한다. 고씨는 사측과의 법리 싸움 끝에 이씨를 입영 위기에서 구해냈다. 고씨는 "노무사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일할 수 있어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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