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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정민 특파원이 지켜본 피랍 확인 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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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팔레스타인 내 가자지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KBS의 용태영 두바이 주재 특파원.(서울=연합뉴스)

"처음 듣는데요. 부탁입니다. 사실대로 얘기해 주세요." 용태영 KBS 두바이 특파원의 부인은 필자에게 애절하게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납치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지 한시간 후 정도다.

필자는 보도가 나온 즉시 이스라엘 주재 한국 대사관 내 여러 외교관들과 전화통화를 해보았지만 "파악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실제로 납치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저녁 9시. 한 시간만에 현지에 전화한 상황에서 당연한 답변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이스라엘 교민들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교민회장에 이어 이스라엘 내 여행사 사장들에게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러 교민을 수소문한 끝에 모 여행사로부터 중동 특파원이 가자지구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바로 두바이에 있는 용 특파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중동 한국특파원은 카이로에 근무하는 연합뉴스 특파원과 필자, 그리고 용 특파원 이렇게 3명뿐이다. 전화를 받은 용 특파원 부인에게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상황을 전달해야할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려는 모습이 목소리를 통해 느껴졌다.

"확실치는 않지만 현재 한국인 피랍 관련 외신보도가 있다"고 말했다. 부인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용 특파원이 가자지구에 간 것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세요." 부인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두시간 전에 남편과 아이 학교 문제로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부인에게 "더 알아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보를 준 교민에게 다시 전화했다. 용 특파원이 묵었던 알다이라 호텔로 전화를 부탁했다. 인터넷에서 호텔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이집트와 가자지구는 국제전화가 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몇 차례 더 부인에게 전화해 "이라크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교민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친절한 분이었다. 알다이라 호텔에 전화해 용 특파원이 현재 호텔에 없다는 것과 또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이 경찰서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알려왔다. 카메라 기자 신씨였다. 즉시 이스라엘 대사관에 경찰서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통화해 보라고 부탁했다. 취재가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잘 아는 동료가 피랍된 것이 거의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용 특파원과는 지난해 8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 당시에도 그 지역에서 같이 취재를 했었다.

부인과 다시 통화를 했다. 부인은 용 특파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다. "호텔에 있다. 대사관과 연락하려고 했지만 잘 안된다. 연락을 취하라. 현재 억류돼 있다고...." 남편으로부터 짧은 전화를 받은 부인은 약간은 안심하면서도 피랍사실을 확인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다시 여러 차례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과 다시 통화를 했다. 대사관 직원은 카메라 기자하고는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 특파원은 "현재 실종 상태"라고 강조했다. 용 특파원과 부인간 통화내용을 전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국경에서 팔레스타인 당국자를 통해 무장단체와 접촉을 시도중이라고 직원은 말했다.

용 특파원이 피랍된 것이 확실해지고 다른 특파원이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음이 확인되자 대사관측은 연합뉴스를 통해 피랍된 한국인이 용 특파원임을 확인해 주었다. 부인은 사건 발생 두 세시간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 이제 곧 아침이 된다. 밤새 잠이나 잤는지 걱정된다. 잠시후 전화를 또 해보아야겠다. 오늘 이곳에 해가 뜨면서 석방소식이 들려왔으면 한다. 카이로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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