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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상인들 자율소방대 결성 … “내 점포 내가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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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19일 서문시장 자율소방대원들과 중부소방대원들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지난 19일 서문시장 자율소방대원들과 중부소방대원들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22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2지구 방재실. 4명이 폐쇄회로TV(CCTV)로 2지구에서 옷·원단 등을 파는 1000여 개의 상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몇층 어느 지점이 발화 위치인지 인지해 알려주는 시스템도 상시 가동 중이다. 방재실은 밤에도 운영된다. 상인들이 퇴근한 뒤인 오후 7시 이후 1명이 남아 CCTV를 계속 지켜본다. 순찰조도 꾸려 주변을 살핀다. 낮에는 6명이, 화재 위험이 높은 야간에는 4명이 순찰을 돈다. 그런데 이들은 경찰이 아니라 시장 상인들과 2지구 관리 직원으로 구성된 31명의 서문시장 자율소방대다.

큰 불 2차례 겪고도 화재 계속돼 #상인·관리직원 주야 순찰조 꾸려 #인근 소방서서 진화요령도 배워 #신평리·능금 등 121개 시장 확대

나영일 서문시장 2지구 시설관리팀장은 “2지구는 서문시장에서도 원단 상가가 집결돼 있어 화재 위험이 높다”며 “우리 시장을 지키자는 마음에 상인들과 시설관리 직원들이 직접 화재 예방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자율소방대는 전통시장의 효율적인 화재예방과 화재 시 신속한 초기대응을 위한 안전관리 조직이다. 지난 22일 발대식을 가진 자율소방대는 시장 인근에 위치한 대신119안전센터(중부소방서 소속)와 협력한다. 한 달에 한 번 자율소방대원들이 센터로 가면 소방대원들로부터 심폐소생술 등 기본 교육을 받고 화재 발생 시 각자 맡은 역할을 점검하는 식이다.

김년석 대신119안전센터장은 “소방대원과 시장 상인들이 꾸준히 교류하면서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가지게 되고 화재 발생 시에도 대처 능력이 빨라질 것”이라며 “2005년과 2015년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인해 많은 상인이 불안해하는데 119와 자율소방대원이 앞으로 잘 협력해 화재를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은 1·2·4·5지구와 동산상가·아진상가 등 4500여 개 점포로 구성됐다. 올겨울에만 화재가 세 차례 정도 발생했다. 다행히 작은 불로 조기 진화됐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2005년 전기 합선으로 대형 화마를 겪은 원단 상인 정영희(60)씨는 “당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며 “할 줄 아는 게 원단 다루는 것뿐이라 트라우마를 안고 다시 시장에 돗자리를 폈다”고 말했다.

이제 정씨의 설재 상가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이인호(36)씨가 자율소방대원으로 나선다. 이씨는 2015년 4지구 화재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이후 시장 상인들이 자율소방대를 구성해 교육을 받고 시장을 지키는 사람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자원했다고 한다. 이씨는 화재 발생 시 소방대와 시장 상인들의 소통창구가 되는 자율관리관을 맡았다. 상인이자 소방서에 소속된 의용소방대원으로 119와 시장 상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씨는 “상인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올 겨울 들어 자잘한 불이 세 차례 정도 발생했는데 다들 안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자율소방대 구성을 반긴다. 김철수 일신라사 대표는 “사실 상인들은 화재 가입이 잘되지 않을 뿐더러 보장금액이 최대 2000만~3000만원밖에 되지 않아 화재가 나면 보상 금액이 적다”며 “보험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는 우리에게 자율소방대 자체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경정 경영상회 대표도 “예방은 물론 조기 진화가 더 중요하다. 상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화재 시 불씨가 옮겨 붙지 않도록 애써달라”고 당부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앞으로 121개 시장에 1300여 명의 자율소방대를 구성할 방침이다. 지난 16일 신평리시장에서 처음 가진 발대식 이후 서문시장, 능금시장, 동서시장 등 차례로 발대식을 가졌다. 23일 오후 동구 동서시장 자율소방대 발대식에서 정규동 동부소방서장은 “소방대원과 시장상인들이 협력해 자율 관리시스템이 조기에 구축될 수 있도록 모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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