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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에 망신당했다" 미국 경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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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포수 진갑용이 미국전 승리가 확정된 뒤 마운드로 뛰어나가며 포효하고 있다(위). 고비 때마다 절묘한 투수 교체로 미국 타선을 막아낸 김인식 감독(아래). [애너하임 AP=연합뉴스]

3루 측 한국 관중도, 1루 측 미국 관중도 모두 일어섰다. 마지막 순간 한쪽은 기적과 같은 승리의 환희에 빠져들었고, 다른 한쪽은 종주국의 무너진 자존심에 허탈해 했다. 세계 최강 미국을 안방에서 무너뜨린 한국 야구의 '반란'은 모두 하나가 돼 만들어낸 화합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명품(名品)이었다.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투수코치, 김재박 타격코치의 절묘한 용병술, 그 임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해낸 구원투수진, 그리고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린 이승엽.최희섭에다 화려한 백조로 변신한 김민재.이범호까지 모두가 어울려 빚어낸 작품이었다.

1회초, 선발투수 손민한이 흔들렸다. 무사 1, 2루에 이은 2사 만루의 위기. 그때 손민한의 진수인 슬라이더가 미국 포수 제이슨 베리텍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삼진-. 그 순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한국팀 더그아웃에 흘렀다.

위기 뒤에 찬스. 무사 1루에서 김민재의 병살타로 기회가 무산되는 듯했으나 이승엽의 번개 같은 홈런 한 방에 미국 선발투수 돈트렐 윌리스가 흔들렸다. 타자들은 이미 "윌리스의 슬라이더는 버리고 직구만 노려라"는 전력분석팀의 지시를 꿰뚫고 있었다. 이승엽은 윌리스의 시속 146㎞짜리 직구 초구를 걷어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그 한 방에 미국 야구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은 3-1로 쫓긴 4회부터 절묘한 투수 교체와 물샐틈없는 수비로 미국의 반격을 차단했다. 4회에 투수진의 막내 전병두가 흔들리자 급히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이 삼진 두 개를 뽑아내며 막아냈다.

4회말 한국의 공격. 2사 2루에서 미국은 홈런타자 이승엽을 고의 볼넷으로 걸러냈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이때 선발에서 빠진 최희섭이 대타로 등장했다. 그리고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3점 홈런으로 승부를 끝냈다.

김병현에 이어 구대성(5회)-정대현(8회)-오승환(9회)으로 이어지는 구원투수진은 튼실했다. 이들은 메이저리거 박찬호.서재응으로부터 미국 타자들의 장단점을 조언받은 대로 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결정적인 호수비도 이어졌다. 5회초 치퍼 존스의 안타성 강습타구를 넘어지면서 잡은 유격수 박진만은 2루수 김민재와 합작해 병살타로 처리, 달아오르던 미국의 타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 벤치의 용병술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미국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치퍼 존스를 상대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벤치는 존스 타석에서 손민한(1회)-전병두(4회)-구대성(5회.8회)-오승환(9회) 등 네 명의 다른 투수를 투입해 3타수 1안타(2볼넷)로 막아냈다. 한국 야구는 이날 김병현 외에는 모두 국내파 투수로 미국을 무너뜨렸다.

애너하임=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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