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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핵심지지층 2030 변심…단일팀·암호화폐 등 돌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라는 글은 19일 현재 3만4000회가 넘는 추천을 기록하고 있다. 남북이 지난 17일 실무회담을 통해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키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땀 흘린 우리 하키 선수들이 먼저”라는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글에 비해 더 많은 추천을 받는 8개의 청원 중에서 3개가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글이다. 최근 암호화폐와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둘러싼 논란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한국갤럽, 文 대통령 지지율 73%→67% #“하락폭, 40대 이하에서 상대적으로 컸다”

실제 주요 포털 뉴스 댓글과 대학 게시판엔 이와 관련돼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부쩍 늘었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특별법을 제정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말한 뒤에는 여권 지지 성향의 네티즌이 모이는 각종 웹사이트도 동요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시선을 끄는 건 이런 온라인 여론의 중심에 20대와 30대가 있다는 점이다. 이들 상당수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고, 특히 지난해 5월 현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적극 지지층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들이 최근 흔들리는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핵심가치와 젊은 세대가 중시하던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①‘공정’의 가치=최근 온라인에선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사연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격파한 뒤 눈물을 흘리며 단체로 큰절하고, 피아노 전공 음대생과 의대생 출신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 스폰서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했던 사연 등이다. 네티즌은 이런 선수들의 사연을 접한 뒤 남북 단일팀 추진을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한 문제에 분노했던 젊은 세대로선 북한 선수단의 합류를 “낙하산”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의 갑질”이란 비난도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지는 않다”는 말은 비판 여론에 더욱 불을 댕겼다.

암호화폐 규제를 두고 정책 혼선을 보였던 정부에 날을 세웠던 젊은 세대는 금융감독원 직원 일부가 정부의 대책 발표 직전 암호화폐를 팔았다는 소식이 18일 알려지자 더욱 분노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계속되는 등 정부가 바뀌어도 새로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가 암호화폐와 단일팀 구성 과정을 ‘반칙’으로 본 것 같다”며 “반칙에 더욱 민감한 세대이기 때문에 실망감도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암호화폐 관련된 현 정부의 정책 혼선은 2030 이탈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중앙포토]

암호화폐 관련된 현 정부의 정책 혼선은 2030 이탈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중앙포토]

②신·구 세대의 간극=현 정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586세대(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북한 문제를 철저히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1991년 탁구ㆍ축구 남북 단일팀이 구성된 뒤 세상에 태어난 지금의 20대는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의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런 젊은 세대로서는 오히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하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북한의 잇따른 핵ㆍ미사일 도발도 직접 목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통일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남북이 단일 민족으로서 단일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비율은 나이가 어릴수록 낮았다. 60대 이상의 47.3%가 단일 국가에 찬성하는데 비해 20대는 20.5%에 불과했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부장은 “더는 민족 정체성에 기반을 둔 통일 논리가 통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같은 민족이니 단일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젊은 세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격파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한 선수는 애국가를 부르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비디오머그 캡처]

지난해 2월 삿포로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격파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한 선수는 애국가를 부르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비디오머그 캡처]

③남한 ‘흙수저’ vs 북한 ‘핵수저’=3대 세습을 통해 북한을 이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인식도 젊은 세대에선 부정적이다. 1984년 1월생인 김정은을 소위 ‘할아버지(김일성) 잘 만난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있다. 온라인에선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흙수저’인데 김정은은 ‘핵수저’를 가졌다”고 반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소문까지 있는 현송월이 이끄는 삼지연 관현악단 등이 휴전선을 넘어오는 것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수강생과 대화를 하다 보면 진보적일 것이란 생각과 달리 오히려 북한 문제에 대해선 학생들이 보수적”이라며 “직접 군대에 가거나 친구들이 군대에 있고, 취업난 속에 삶이 팍팍한 상황에서 북한 지원 문제에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인다”고 말했다.

④소통=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에서 젊은 세대가 문제로 지적하는 중요 포인트는 당사자와의 소통이다. 단일팀 추진 소식은 정부 관계자 등을 통해 알려졌고 선수단은 논의가 한참 진행된 뒤에야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새러 머리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이 당황해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찾아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이 있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땀과 눈물을 흘려온 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비판 여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이 19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조사 결과. 전주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한 67%였다.

한국갤럽이 19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조사 결과. 전주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한 67%였다.

주요 지지층에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소폭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한 67%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70% 아래로 내려간 건 지난해 9월 4주차(65%) 이후 16주 만이다. 한국 갤럽은 “국정수행 긍정률 하락폭은 40대 이하에서 상대적으로 컸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번 조사에서 지지율 낙폭이 컸다는 얘기다.

리얼미터가 전날 발표한 조사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한주 전과 비교해 3.5%포인트 떨어진 67.1%를 나타났다. 2주째 하락세를 보이며 70% 지지선이 뚫렸다. 리얼미터는 “가상화폐(암호화폐), 유아 영어교육 정책 혼선,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논란 등이 관련 직업·계층의 이탈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남북 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동시 입장 등 남북회담 주요 현안의 정쟁화에 따른 이념 대립의 심화 역시 지지층 이탈의 한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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