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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10년 후, 다시 부끄럽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10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요? 십대 중반에 데뷔하여 꾸준히 좋은 음악을 발표한 가수가 데뷔한 지 10년 만에 최근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자 신문의 헤드라인은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 치하합니다.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1993년 발표한 논문에서 설명된 법칙으로,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꾸준히 노력해야 전문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20년의 절차탁마를 행하는 무협지의 주인공을 우리가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은, 새해 다이어트 결심 따위는 어제 늦은 밤 배달시킨 치킨과 함께 이미 날아간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연말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한 해를 돌아보는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각자 최근 만든 자료를 발표하며 10년 전의 자료들도 함께 열어보니 자료의 표현이나 매무새가 오래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패션처럼 한참 촌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자신 있게 만들고 안팎으로 공유하던 자료들이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 민망하고 부끄러운 감정을 모두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빅 데이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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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전을 돌아보고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든 생각은 10년 후에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멈춰 있지 않고 천천히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숙련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뿐 아니라, 선비는 사흘만 지나 보아도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한다는 삼국지 속 여몽의 이야기처럼 더 나아짐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과학은 다양한 설명을 시도합니다. 도파민의 분비와 새로움이 줄어드는 감각의 변화에서부터, 다양한 의무에 지난한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라도 그야말로 “바쁜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바쁨이 우리의 성장을 위해 쓰이고 있을까요? 술을 마시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어린 왕자 속 주정뱅이처럼, 허무함을 잊기 위해 “바쁘시죠?”를 서로 주고받기 보다 왜 바쁜지 멈춰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다음 10년 후의 “부끄러움”을 다시 또 기대하며 1월의 결심을 새로이 시작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