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소포모어 징크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하면 비키니부터 떠올리기 십상이다. 1964년부터 매년 내온 ‘수영복 특집호’는 비키니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까닭은 따로 있다. 이 잡지 표지에 실린 선수는 다음 시즌에 성적 부진을 겪는다는 징크스 얘기다. 이른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징크스’다. 표지인물로 선정돼 주목을 받게 되면 압박감으로 최상의 경기를 펼치지 못하는 역설이 작동하는 탓이란 설명이 따라붙는다.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정립한 ‘평균 회귀’ 이론에 기댄 해석도 있다. 선수로서 정점을 찍었으니 평균에 가까워질 일만 남았다는 거다.

데뷔 첫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운동선수·연예인일수록 염려하는 게 있다. 바로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다. 자신감 과잉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다 보면 부진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징크스를 보란듯이 깬 경우도 수두룩하다.

영화 ‘1987’에서 ‘연희’를 연기한 김태리의 첫 작품은 2016년의 ‘아가씨’다. 그해 신인상을 휩쓸며 역대 신인 배우 중 가장 센세이셔널하게 데뷔했다는 평을 받았다. 당연히 소포모어 징크스를 우려하는 시선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1년 뒤 두 번째 작품 ‘1987’에서 울림이 있는 연기로 징크스를 단박에 깼다. 촬영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를 외친다는 그의 ‘프로 의식’이 낳은 결과일 듯싶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당연한 사실처럼 얘기되는 건 야구가 원조라고 한다. 한국 야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양의지·서건창·박민우·구자욱·신재영 등 2010년대 신인왕 수상자들은 이듬해에도 성적이 좋았다. 왜일까. 방심과 자만을 경계하는 선수들의 프로 의식이 강화된 덕분이란 분석이 많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가 소포모어 징크스 우려를 낳고 있다. 잇따른 정책 혼선 탓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번복,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백지화, 여야 합의 뒤집은 아동수당 100% 지급 등 한둘이 아니다. 첫해 지지율 고공행진에 취해 힘이 너무 들어간 걸까. ‘현장 패싱’ ‘여론 홀대’ ‘협의 부재’가 난무한다. 그러니 배가 산으로 간다. 소포모어 징크스는 높은 기대치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보고 ‘평균 회귀’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가 안위와 민생이 걸린 엄중한 국정이 아닌가. 정부의 ‘프로 의식’을 기대하는 건 공염불일까.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