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나쁜 놈과 도둑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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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희를 죽인 건 김재규였다.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했다. 그러나 김재규를 그렇게 만든 건 차지철이었다. 대통령 경호실장이 원인제공을 한 셈이었다.

차지철의 권력욕 때문이었다. 그 역시 김재규의 총에 죽고 말았다. 차지철은 유신정권 최고의 실세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지금의 실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권력을 누렸다.

차지철은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차윤염. 일제시대에 경찰 쪽 일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는 주막집을 운영했다. 차지철에겐 지(池)씨 성을 가진 누나 셋이 있었다. 아버지가 다른 누나들이다. 지철에겐 희철이란 형도 있다. 어머니가 다른 형이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때 데려왔다.

그러나 차지철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지철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형 희철을 데리고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혼자서 자식 넷을 키웠다. 지지리도 어려운 삶이었다.

어린 지철의 마음 속엔 일찍이 상처가 자리했다. 지철이 좋아하는 놀이는 기찻길 놀이였다. 친구들과 기찻길에 올라 기차가 가까이 오면 뛰어내리는 게임이었다. 늦게 내려오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다.

주막집 앞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가 지나갔다. 지철은 언제나 1등이었다. 그는 두려움이 없는 아이였다. 세상을 향한 울분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갔다. 상처가 울분을 만들었고 울분이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그의 5.16 동참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이 됐고 청와대 경호실장이 됐다. 그러나 언제나 그는 과격했다.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면 된다"던 그였다. 자기 권력을 위해 다른 권력을 짓밟았다. 그로 인해 죽었다.

그가 죽자 생전에 부정 축재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탐욕스러운 그의 이미지가 소문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드러나는 건 없었다. 소문도 사그라졌다. 그의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차지철이 죽은 뒤 나름의 결심을 했다. 지철이 '나쁜 놈' 소리를 들을지언정 '도둑놈' 소리를 듣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최소한의 명예로 여긴 거다. 도둑놈이 나쁜 놈보다 더 나쁘다고 본 거다. 배운 것 없지만 자식 사랑은 남다른 여자였다.

언제나 "돈을 탐하진 말라"고 가르쳤던 그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죽은 자식을 위해 그녀가 택한 길은 '밑바닥' 삶이었다. 그녀는 차지철과 함께 살던 동교동 집을 비웠다. 대문에 못을 박고 몸만 나왔다.

그러고는 서울 강동구 끝자락의 8평짜리 아파트에 들어갔다. 교회 사람들이 주는 1천원짜리 한두 장이 유일한 생계원이었다. 김칫국물이 묻은 남루한 한복 한 벌만 입고 살았다. 길거리의 구걸하는 할머니와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마다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 도둑질은 안 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끼니까지 굶어가며 그렇게 살다가 갔다. 때문에 '도둑놈' 소리만은 면한 차지철이다. 만약 드러나지 않은 축재가 있었다면 어머니의 고행이 속죄를 대신한 거다. 그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다.

DJ가 즐겨 하던 말이 있다. "권력과 명예, 돈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권력도 얻고 돈까지 벌 생각을 한다면 모든 걸 잃고 만다." 측근들에게도 신신당부했다. 그럼에도 그의 측근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 권력과 명예에다 돈까지 넘봐서다.

결국 그들은 DJ의 말대로 모든 걸 잃었다. 주변이 챙겨줄 명예마저 내주었다. 그들이 모시던 보스의 명예까지 얼룩졌다. 부디 현재와 미래의 권력 실세들이 새겨둘 대목이다.

이연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