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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더리움 70배 번 기억에 투자원금 절반 잃어도 손 못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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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13일 만난 대기업 직원 김모(33)씨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다. 실시간 암호화폐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날까지 ‘수천만원을 벌었다’던 그였지만 일주일 새 폭락을 경험했고 수익은 반 토막이 났다. 사진은 김씨가 참여하는 여러 암호화폐 정보 공유 채팅방의 모습. [오원석 기자]

지난 13일 만난 대기업 직원 김모(33)씨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다. 실시간 암호화폐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날까지 ‘수천만원을 벌었다’던 그였지만 일주일 새 폭락을 경험했고 수익은 반 토막이 났다. 사진은 김씨가 참여하는 여러 암호화폐 정보 공유 채팅방의 모습. [오원석 기자]

사실 기자는 5년 전 비트코인을 산 적이 있다. ‘암호화폐’라는 개념이 국내에 막 알려졌을 때다. 한 비트코인 거래소에 딱 1만원 정도 넣어 놨다. 요즘 암호화폐 광풍을 지켜보다 그 1만원이 생각났다. 이달 초쯤 거래소 아이디(ID)와 패스워드를 어렵사리 기억해 들어가 봤다. 웬걸? 1만원은 30만원 이상(*17일 기준 19만원대)으로 불어나 있었다. 일순간 ‘왜 목돈을 넣어 두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이후 틈이 나면 거래소 사이트에 들어가는 버릇이 생겼다.

30대 기자가 만난 2030 코인 열풍 #대학원생 인터뷰 중에도 시세 확인 #“누가 들어와야 내가 먹튀하는데” #대출해가며 1억 넣은 대기업 직원 #“24시 거래돼 잠도 편하게 못 자” #최근 폭락에 코인 채팅방 불야성 #“무조건 투기로 몰아 규제 화난다”

암호화폐에 열광하는 20~30대들의 이야기는 생판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30대 초반의 사회부 기자들로 구성된 취재팀은 지난 일주일간 비슷한 또래의 암호화폐 투자자를 10명 가까이 만났다. 서울 지역 대학원생 강모(31)씨는 아르바이트로 2주 동안 번 80만원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퀀텀 등에 투자했다. 지난 14일 만난 강씨는 “열흘 전에 퀀텀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넣었는데 98만원까지 오르다가 지금은 78만원이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코인 시세를 확인하던 강씨는 “지인은 1000만원 넣어 1억원 벌었다는데… 아, 또 5만원 떨어졌네.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돈 빼고 먹튀(‘먹고 튄다’의 줄임말)를 하지”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게임회사 개발자 김모(32)씨는 지난해 6월 이더리움이 8400% 올랐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보고 투자를 시작했다. 김씨는 “처음에 이더리움에 투자해 10만원으로 700만원을 벌어 봤다. 그런 거 한 번 경험하면 돈 쉽게 못 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후 다른 암호화폐에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20~30%씩은 꾸준히 나다가 최근 장이 폭락하면서 원금 50%를 잃고 ‘존버’(‘존X 버틴다’를 줄인 은어)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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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돌아간다. 수천 종류의 코인은 천만원대부터 몇백원대 수준까지 다양하다. 공인인증서 등 복잡한 (투자) 절차도 특별히 없어 젊은이들이 더욱 몰린다. 서울대 ‘스누라이프’나 고려대 ‘고파스’ 등 대학 커뮤니티 내에도 암호화폐 전용 게시판이 개설됐다. 시장과 관련된 작은 뉴스, 정부의 규제 정책 발표 하나에도 코인 가격은 요동친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오픈채팅방에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600여 명의 투자자가 참여하는 한 오픈채팅방을 며칠간 지켜봤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수백 개의 대화가 쌓여 있었다. ‘리플(암호화폐 종류) 1300(원)에 1차 매수요’ ‘32층까지 가야하는데(1코인당 가격이 3200원까지 올라야 하는데)’ 등 대화는 밤새 이어졌다. 지난해 신용대출까지 받으며 1억원 이상 코인 시장에 투자한 대기업 직원 김모(33)씨는 “우리가 잘 때는 ‘버거애들’(미국 시장을 뜻하는 은어)이 코인을 던져(팔아) 흐름이 또 바뀐다.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피곤함을 감수하면서도 2030세대들이 코인에 매달리는 이유는 계산기만 두드리면 금세 나온다. 야근까지 자처하며 하루 종일 일해 번 돈과 코인 좀 잘 굴려 번 돈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수익률이 훨씬 낫다. 이들은 “애초에 집안이 ‘금수저’라면 모를까, 일반 회사원이 월급을 아무리 모아도 서울은커녕 수도권의 아파트 한 채도 마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나마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 윤모(30)씨는 “코인 시장은 우리 세대가 찾은 새로운 ‘투자시장’인데 나라에서 무조건 투기로만 보고 규제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요 며칠 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커뮤니티나 채팅방에서 ‘지금 한강 수온이 몇 도?’ ‘한강 가즈아(가자)’ 등의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심정이 어렴풋이 이해는 갔다. 10년 뒤, 20년 뒤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 상실감이 청년들을 코인에 매달리게 하는 것 아닐까. 독특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진 ‘코린이’들은 그렇게 한국 사회 도처에 자라나고 있었다.

홍상지·오원석·최규진 기자 hongsam@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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