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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새마을 사건도 이제 관심의 초점을 두가지로 좁히면서 차츰 정리단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관심의 하나는 두말할 것 없이 전경환씨에 대한 사법처리다.
그가 무슨 법으로 얼마만큼 벌을 받을까에 국민의 시선이 쓸리고 있다.
여론이 나쁘다고 없는 죄까지 덮어씌워서는 안되겠지만 저지른 만큼의 법적용은 있어야 할 것이다.
관심의 다른 하나는 이 사건에 대한 전대통령의 책임문제다.
전대통령이 물론 동생의 비리를 눈감아줬다거나 알고도 모른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전대통령은 평소 동생의 탈선 가능성을 걱정했다고도 들린다.
심지어 새벽이나 밤중에 불시에 동생 김을 찾아가 사치스럽게 살지나 않는지, 외제거를 탄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한 일도 있었다고 들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재임중에 자기 정부의 직·간접적인 방조·묵인·실수아래 친동생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 그 역시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전씨에 대한 처벌보다는 오히려 전대통령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에 관심이 더 쏠리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벌써 낙향론이 나오고 원로 자문회의 의장 사퇴론이 거론되기도 한다.
조만간 이 두가지 관심사의 귀결은 우리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새마을 비리사건을 이런 식으로만 넘겨도 좋은 것인가.
법에 따라 처벌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우는 일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따져볼 일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한마디로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리가 일어났으며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문제다.
대통령의 동생이면 동생이 지고 위공직자·정치인·기업인들이 줄줄이 그 앞에 진배하고 턱 끝으로 관청과 은행을 부리며 수백억을 손쉽게 요리했다는 요지경 같은 일이 왕조시대도 아닌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7년간이나 가능했는가.
우리는 자유당시절 「귀하신몸」사건을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요, 이기붕의 장남이었던 이강석을 사칭한 무명의 청년이 시장·군수·서장의 지극한 환대를 받으면서 「귀하신 몸」으로 호유한 희극적 사건의 확대편 같은 냄새가 이번 새마을 사건에서 물씬 풍긴다.
「귀하신 몸」사건에서 볼 수 있는 권력 콤플렉스라 할까, 권력 매저키즘이라 할까 할 의식구조가 30년이 넘도록 우리사회에 끈질기게 내려오고 있음을 이번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30년전 시장·군수들이 가짜 「귀하신 몸」에 절절 기며 혹시 그 눈에 들어 반복할 기회라도 잡으려한 의식구조가 이번에는 진짜 「귀하신 몸」을 맞아 마찬가지로 유감없이, 그 보다 더 요란하게 발휘된 것이다.
드러난 새마을 비리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바로 권력에 줄대기, 아첨하기, 알아서 기기의 작태다.
『전회장이 골키퍼를 보다가 단독으로 공을 몰아 골인시켰다』는 새마을 신문의 l면 톱기사가 나왔다는가 하면 『대양같은 회장님…』이란 발언이 새마을 교육장에서 있었다고 한다.
이 개명천지에 누가 들어도 웃을 이런 아첨이 나오는 의식 구조란 어떤 것인가.
이런 일이 그의 주변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씨가 지방에 가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지사·시장·경찰국장이 마중을 나오고 숙소는 항상 기관장들로 붐볐다고 한다.
그를 만나려는 공직자·정치인·기업인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기업들이 성금을 냈다고 하지만 A급 대기업이 5억원을 낼때 자기형세에 걸맞지 않게 7억원을 낸 중위권 기업이 있었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경쟁이나 하듯 새마을 본부의 강당·연수원을 몇억씩 들여 지어 바치기도 했다.
물론 전씨가 이런 「귀하신 몸」대접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그 위에 압력을 넣고 강요한 더 큰 잘못을 저지른데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한폭이 대통령 가족임을 권세로 알고 으시댔다면 다른쪽은 한술 더 떠 아첨하고 비위 맞추고 알아서 기고 거기에 줄을 대보려고 한것이 새마을 비리의 토양이었던 것이다.
마치 대통령을 왕으로, 그 가족을 왕족으로 생각하는 왕조적 의식구조가 양쪽에 다 있었던 셈이다.
전씨뿐 아니라 그 백씨인 기환씨에 대해서도 용산 마피아니 하는 소리가 나오고 전대통령의 장인·처숙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오는 근본 까닭이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 구조에서는 공직자의 직업정신같은 것도 기대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공무원이면 공무원대로, 은행원이면 은행원대로 직무를 수행하는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 법인데 새마을본부의 일이라면 위법이거나 말거나, 요건 미달이거나 아니거나 모조리 다 들어주었다.
옛날 왕조시대에도 「아니 되옵니다」고 버틴 강직한 신하가 많았다는데 명색 민주주의·법치주의를 한다는 사회에서 버티다가 좌천되거나 목이 달아난 경우 하나를 신문에서 볼 수없으니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이런 「귀하신 몸」과 같은 의식구조에서는 민주주의도 안되고 권위주의 청산도 될 수 없으며 제 2의 새마을 사건이 안나온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어느 권력에서든 실력자는 있게 마련이다.
또 센 사람이 나타나 이것 저것 힘을 쓰면 거기에 줄대려는 자, 알아서 기는 자, 아첨하는 자들이 줄줄이 안나온다고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권위주의는 부활하고 새마을 사건이 아니면 헌마을 사건이라도 터질지 모른다.
제6공화국도 장담하기엔 이르다.
얼마전 새대통령의 종제 결혼식에 손님이 메어 터졌다는 얘기가 있었고 새정부의 신주류가 누구누구니 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우수수 들린다.
새마을 비리를 보면서 권력은 권력대로 물러난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도록 평소자세를가다듬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센자에 줄대고 알아서 기는「귀하신 몸」적인 의식구조에 대한 깊은 생각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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