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서 박정희 前대통령 욕해 ‘긴급조치위반’ 망자, 40년 만에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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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위반 현상수배 전단지(왼쪽)와 광주지방법원 전경. [연합뉴스ㆍ뉴스1]

긴급조치위반 현상수배 전단지(왼쪽)와 광주지방법원 전경. [연합뉴스ㆍ뉴스1]

버스 안 다른 승객들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부정책에 대해 욕을 했다가 유죄를 선고받은 망인이 40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이상훈)는 12일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등의 형을 선고받은 A씨(1919년생ㆍ1987년 사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공소사실은 적용법령인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ㆍ무효로,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씨는 57세이던 1976년 전남 담양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리에 앉지 못하자 승객들 앞에서 “박정희가 정치를 못 해 높은 놈들만 잘살게 하고 서민들을 죽게 만들었다” “댐 공사비는 주지 않으면서 일만 시켜먹고 있다” “정치도 못하면서 세금만 몽땅 올렸다” 등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퍼뜨렸다며 긴급조치위반죄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 법원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 A씨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ㆍ 자격정지 2년에 처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해당 판결은 1977년 4월 확정됐다.

검찰은 2013년 긴급조치위반죄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7년 11월7일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재심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2013년 4월 긴급조치 제9호는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ㆍ무효여서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부는 지난 2013년 1970년대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ㆍ2ㆍ9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긴급조치 1ㆍ2ㆍ9호에 대해서만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모두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대통령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공포한 유신헌법을 바탕으로 1~9호까지 발령됐다. 이 중 1975년 5월 13일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집회ㆍ시위 또는 신문ㆍ방송 기타 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ㆍ선포하는 행위 등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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