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재인 정부 위안부 합의 검토 TF 발표, 양국 가교 역할한 사람들 입지만 좁혀”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66호 06면

‘지한파’ 일본 언론인이 보는 최근 한·일관계

하코다 데쓰야 일본 아사히신문 한반도 담당 논설위원.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다음 날 1면 칼럼(오른쪽 작은 사진)을 썼던 하코다 위원은 13일 인터뷰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색이 거의 없는 일본 시민들의 관심이 한국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하코다 데쓰야]

하코다 데쓰야 일본 아사히신문 한반도 담당 논설위원.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다음 날 1면 칼럼(오른쪽 작은 사진)을 썼던 하코다 위원은 13일 인터뷰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색이 거의 없는 일본 시민들의 관심이 한국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하코다 데쓰야]

하코다 데스야(箱田哲也·52) 일본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13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발표와 이후 정부의 대응에 “실망스럽고 강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코다 위원은 두 차례의 한국 특파원 근무를 합쳐 모두 10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지한파 언론인이다.

하코다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일본의 책임·사죄는 ‘역사적 사건’ #문재인 정부 대응 실망스럽고 불안 #한국측 상당히 강한 결의 갖고 협상 #TF, 일본 서류 안 봐 전모 파악 못해 #아이러니하게 혐한파 목소리 커져 #일본, 추가 협상 나서지 않을 것

그는 1991년 8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한국인 위안부의 존재를 공개 증언한 이후 위안부 할머니, 한·일 양국의 정치인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를 해왔다. 아사히신문은 그동안 일본의 보수 성향 언론과는 달리 피해자의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뤄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TF, 10억 엔과 소녀상 이전은 무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 27일 TF 검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2월 27일 TF 검토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브리핑실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왜 검토 TF 결과에 실망했나.
“문재인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생각이 정말로 있는지 의심스럽다. TF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일본 쪽의 책임과 사죄, 반성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 사반세기 동안 양국은 한 번도 합의를 보지 못했는데 일본 정부, 그것도 역사 문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아베 정권이 사실상 국가로서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TF 보고서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다만 TF는 일본이 낸 10억 엔과 소녀상 이전 문제를 교환했다는 밀약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 문제를 놓고 아사히신문 등 수많은 한·일 언론이 부정확한 보도를 해왔다.”
 한·일 관계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과연 2년 전 합의보다 진전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한국 정부의 대응을 일본에서 가장 환영하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혐한파(嫌韓派)다. ‘거 봐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한국의 참 모습’이라고 외칠 기회를 잡았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한국을 이해하자면서 그동안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온 사람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합의에 담긴 ‘불가역적인 해결’이란 표현에 대해 비판이 많은데
“TF 발표대로 이 표현은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 당시 제안을 들은 일본 측은 매우 놀랐다. 한국은 일본이 또다시 2014년 이뤄진 ‘고노 담화 검증’ 같이 책임과 사죄에 대한 입장을 번복하는 듯한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제안했다. TF는 협상 도중 이런 입장이 뒤바뀌어 ‘이번 위안부 합의가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맥락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한국 측은 ‘불가역적’의 취지를 스스로 바꾸거나 정정한 사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당시 미국의 압력으로 양국이 서둘러 합의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내가 취재한 바로는 합의 당시 미국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 진전을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는 TF 보고서 내용에는 동의한다. 일본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위안부 문제 외의 사안으로 인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윤 장관 라인으로는 두 정상 간 혼네(本音·진심)로 협상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비밀접촉이 시작됐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협상 내용을 모두 다 밝힐 순 없지만 당시 한국 측은 상당히 강한 결의를 갖고 협상에 임했다. 협상을 주도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집안 식구 중에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만큼 강하게 일본을 밀어붙였고 일본은 마지막까지 힘들어했다. 이번 TF는 한국에 남아 있는 서류만 봤을 텐데 당시 일본 정부의 상황과 협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보고서 내용과는 달리 매우 치열한 상황이었다.”
 일본에서도 합의 이후 반발이 많았는데.
“합의 이후 두 나라 정부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일본 내에서도 ‘국가 책임’을 인정한 부분에 비난이 많았지만 아베 정권은 합의의 긍정적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여론을 무마했다. 반면 한국에선 역사적인 성과 부분은 부각시키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췄다. 한국 정부는 책임 추궁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대통령이나 외교장관이 전면에 나서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성과를 설명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지금 같은 여론이 형성됐을까. ‘불가역적’의 취지가 어느 순간 변한 것만 보더라도 한국 측 대응은 너무 미숙했다.”
 협상에 참여한 양국 관계자들의 운명도 극명하게 엇갈렸는데.
“일본에서는 당시 협상에 참가한 담당자들이 순조롭게 승진했다. 정부 결정에 흠결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반면 한국 측 관계자들은 내가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냉대를 받았다. 한·일 관계를 생각해 굳이 어려운 작업에 나섰던 화해·치유재단 이사진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한국 정치인이나 외교관 중에 일본과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서려는 사람이 있을까. 책임 있는 자리를 모두 기피하면 결국 한국의 피해자 분들만이 오롯이 남게 될 것이다. 두 나라 모두에게,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향후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문 대통령은 역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하겠다는 입장인데.
“한국은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베 정권은 물론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부 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려놓는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과거 일본 보수정권이라면 경제나 문화교류 같은 분야와 정치 문제를 분리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일본 정부에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다. 한국 경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일본에도 악재지만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 등의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정치색이 거의 없는 일본 시민들의 관심이 한국에서 떠나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나 K팝의 인기는 여전하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본은 고노 담화가 여전히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했고 아베 총리 자신도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 일본인들은 세대를 넘어 과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마음을 다한 사죄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고 말했는데 무작정 사죄하라고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일본 측 발언을 활용해 견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5년 합의 발표 당일 나는 아사히 신문 1면에 합의는 정치적 결정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릇에 혼을 불어넣는 일이라는 칼럼을 썼다. 정부·시민단체·학계·언론 등이 각각의 위치에서 혼을 불어넣는 활동을 해야 한다.”

박유하 교수 재판이 또 다른 바로미터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인터뷰 말미에 하코다 위원은 “기자로서 일본에선 일본 정부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힘든 표현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한·일 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한 기자의 독언(獨言)이라고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꼭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박 교수를 열심히 지원하는 사람들은 한·일 간의 우호를 강하게 바라고 활동해온 사람들”이라며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한·일 관계에 너무나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된 저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허위 사실을 기록한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2심에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 1965년생. 88년 아사히신문 입사. 99~2003년 서울특파원. 2008~2012년 서울지국장. 2012년 4월~현재 한반도 담당 논설위원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