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조장한 사회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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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마을 비리」는 시간이 지나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봇물 터지듯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다간 끝도 한도 없을 것 같다. 당초 우리를 놀라게 했던 영종도 사건이나 엄청난 새마을 성금, 국고지원 등은 약과고 뚜껑을 열기가 무섭게 새로운 비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어저께는 대한체육회가 관련되었는가 했더니 해외개발공사 출장비도 전용했고 신용보증기금 사옥매입에도 검은 손이 닿았던 모양이다. 국민학교 코흘리개들이 모아 준 성금에서부터 소 값 파동에 이르기까지 혀를 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잇속이 따르고 냄새나는 곳이면 전천후에 마구잡이로 개입이 안된 게 없을 듯한 느낌이다. 검찰이 전면수사에 나선지 불과 이틀 남짓한데 이 정도이니 앞으로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부정과 비리의 갖가지 양태는 점입가경일 것 같다.
검찰은 지금 새마을 비리를 새마을 관련단체의 비리와 전경환씨 개인비리 등 두 갈래로 나눠 실정법에 어긋나는가 여부를 가리고 있다. 이를테면 새마을이 저질러 놓은 각종 비리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느냐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수사만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다같이 생각하고 고민해야하리라 본다. 청소년 범죄의 급증 원인을 청소년 범죄를 낳게한 사회에서 찾듯이 권력형비리가 빚어질 수 있었던 우리의 토양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할 것이다.
기업들이 낸 새마을 성금만 해도 그렇다. 재벌기업은 연간 10억원 이상, 준재벌급은 1억∼9억 원, 기타업체는 1억 원 미만을 꼬박 꼬박 바쳐왔다고 한다.
그 엄청난 돈을 돈이 남아서도 아니고 새마을 정신에 감복해 스스로 자발해서 바친 것도 아니다. 살아 남기 위해, 권력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낸 것이다. 권력의 눈에 벗어나면 있을지도 모를 보복, 다시 말해 세무사찰이나 각종 불이익을 모면키 위해 성금을 낸 것이다.
관의 협조로 이뤄진 새마을 비리도 같은 맥락이다. 협조를 하지 않으면 목이 위태롭고 눈에 잘 보이면 지위의 보존은 물론 좋은 앞날까지도 보장된다. 행정의 재량권이 방대해 국고집행과 보조를 그럴 듯한 명분과 합법성의 근거를 만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집행할 수 있다. 법령은 있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여하에 따라 변칙 적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새마을 비리는 따지고 보면 정치와 행정의 미분리, 권력의 이상 비대와 전횡, 무한대의 재량권, 공권행사의 부도덕성, 언론부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요인들이 복합해 빚어진 것이다.
언론이 새마을 성역을 마음대로 파헤칠 수 있었더라도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선진 외국처럼 권력이 고도의 도덕성을 갖거나 공무원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되었더라도 관과의 유착으로 만들어낸 비리는 한결 덜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고 구현하는 견제와 감시와 통제의 여러 제도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무소부위의 작태가 활개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어느 누구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리를 방조하고 부채질했던 사회풍토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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