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 진료비 4000억 ‘외상’ … 자금난 병·의원들 치료 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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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병원 창가에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입원 환자. 지난해 의료급여 미지급 진료비가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포토]

병원 창가에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입원 환자. 지난해 의료급여 미지급 진료비가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포토]

지난해 의료급여 환자 진료비 4000억원이 ‘외상’으로 깔려 의료기관에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대상자 1년 새 6만 명 늘었지만 #정부 예산 반영 안돼 지급 늦어져 #복지부 “이달 중 밀린 비용 해결”

의료급여 대상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병원 진료를 받더라도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 환자가 진료받으면 병원이 정부에 진료비를 청구해 받는다. 재원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나눠 부담한다.

진료비가 제때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의료기관들이 의료급여 환자를 기피하는 일이 벌어진다. 지방의 한 내과의원 원장 A 씨는 지난달 투석치료를 받으러 온 의료급여 환자 2명을 치료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투석 치료 환자가 꽉 찼다는 핑계를 댔다. 의료법상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해선 안 된다. A 씨는 “안 되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급여 환자 진료를 많이 받는 편인데 지난해 10월, 11월 진료비도 아직 정부에서 보전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직원 급여가 밀릴 정도로 자금난에 빠지다 보느냐고 해선 안될 일까지 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외상 진료비'는 거의 매년 발생한다. 2015년 168억원, 2016년 2258억원이었고 지난해 2배로 늘었다. 밀린 진료비는 대개 이듬해 새 예산이 나오면 그걸로 갚는다. 늦게 지급하면서도 지연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 의료기관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매년 전년도 진료비를 기준으로 예산을 짜는데, 실제로 발생하는 진료비는 항상 이보다 많기 때문이다. 예비비 예산 등으로 막지만 역부족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 진료비가 예상치를 초과하는 이유는 건강보험 적용 범위 확대 때문이다. 건보를 확대하면 의료급여도 따라가게 돼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수시로 확대되다 보니 의료급여 지출도 늘어난다.  또 의료급여 대상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기도 했다. 2015년 7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맞춤형 급여로 개편되면서 의료급여 대상자가 147만명(2015년)에서 153만명(2016년)으로 1년 새 약 6만명이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10월부터 새 정부의 건보보장성 강화 정책, 즉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면서 진료비 지출이 늘어난 이유도 있다. 의료급여 환자 부담이 적자 보니 의료 이용량이 늘어난 것도 외상 진료비의 원인이다.

외상 진료비는 의료급여 환자가 많이 찾는 정신병원·요양병원이나 규모가 작은 동네의원의 경영을 압박한다. 제때 치료재료나 의료기기를 구입하지 못한다.

한 요양병원 다인실의 모습. [중앙포토]

한 요양병원 다인실의 모습. [중앙포토]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정부가 일부 의료급여 환자들의 의료 남용을 우려해 다수의 의료급여 환자와 병원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에서 진료비를 미리 지급하고 국고로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섭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장은 “예산을 짤 때 다음 해 진료비 상승률을 예상해 반영하는데 지난해는 예상보다 지출이 급증해 미지급금이 늘었다”며 “이번 달 내에 밀린 비용을 해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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