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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에 동네 물가 인상 압박 … 문 대통령은 “상가임대료 낮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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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새해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며 ’가계소득 증대와 내수 확대를 통해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새해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며 ’가계소득 증대와 내수 확대를 통해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 올린 7530원으로 정하자 정부는 다음 날 바로 대책을 내놨다.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이라는 제목이다.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으로 부담이 커질 영세 자영업자 등이 대책의 주 타깃이라는 의미다.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이 대표적인 예다.

생활물가 부작용 간과한 당국 #“물가 인상 안 돼” 읍소·감시 수준 #공정위 ‘납품가 인상 압박’ 엇박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자리안정기금과 사회보험료 경감대책을 차질 없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세사업자들에게 임금보다 더 큰 압박을 주는 상가임대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책들을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부가 등한시한 분야에서 최저임금 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물가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업체 등을 중심으로 물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동네 식당부터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까지 새해 들어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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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일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존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이상 원가가 올라 가격 상승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 정부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모양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8일 “연초에 대체로 물가는 오르기 때문에 현재 물가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올랐다고 보기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정책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영세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원가가 오를 경우 이를 반영해 납품단가를 올리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계약서에 담기로 했다. 납품원가를 올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납품업체와 대형 유통업체가 나눠 지자는 취지다. 대형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자연히 제품 가격 인상 압력이 될 수 있다.

물가 사정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에 정부가 대응책을 내놓긴 했다. ‘읍소’와 ‘감시’ 수준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5일 최저임금 인상 관련 현장 방문에서 식당 점주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렵다고 해고하거나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최저임금 인상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면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최근 일부 업체의 가격 인상을 ‘편법’으로 몰아가며 압박하는 셈이다.

하지만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보호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물가 상승과 같은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안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은 예상 가능하다”며 “이제 시작이고 향후 노사 협상 등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면 인건비와 물가가 동시에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는 걸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시장과 학계에서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에 대한 여러 부작용을 염려했고, 빠르게 현실화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춰야 여러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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