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B는 필요없다 … ‘아이언맨’ 윤성빈의 금빛 멘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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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스켈레톤 6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 [AP=연합뉴스]

스켈레톤 6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 [AP=연합뉴스]

‘보고 있나?’

불안감 적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 #징크스·루틴 없고 경기 일기 안 써 #빠르게 내려갈 수 있는 방법에 집중 #최근 월드컵 우승, 썰매 첫 금 시동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스켈레톤 경기가 벌어진 슬라이딩 센터의 출발선에 오른 한 청년의 스파이크화에 적혀 있던 문구다. 혈혈단신으로 나선 첫 올림픽에서 청년은 16위에 올랐다.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스켈레톤이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그로부터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이언맨’ 으로 불리는 이 청년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노린다. 청년의 이름은 윤성빈(24·강원도청)이다.

윤성빈은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2017~18시즌, 2·3·4·6차 월드컵을 석권했다. 라이벌이자 월드컵 최다(50회) 우승자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를 상대로 올 시즌 4승2패를 기록 중이다. 특히 지난 6일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열린 6차 월드컵 우승은 더욱 각별하다. 그는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알텐베르크 트랙의 시상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윤성빈도 “한번도 입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우승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5일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열린 스켈레톤 6차 월드컵에서 스타트하는 윤성빈. [AP=연합뉴스]

5일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열린 스켈레톤 6차 월드컵에서 스타트하는 윤성빈. [AP=연합뉴스]

스타트 및 주행 기술 등 전반적인 능력에서 윤성빈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돋보이는 건 강한 멘털이다. 윤성빈은 평소 “어떠한 변수가 있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완벽한 주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레이스를 펼친다. 민석기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연구원은 “심리 검사를 해봤더니 윤성빈은 불안 수준이 낮은 반면 자신감이 높게 나온다. 제어장치 없이 몸의 감각만으로 경기를 해야 하는 스켈레톤에 최적화된 선수다. 기량이 좋아지면서 멘털도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처드 브롬리(영국) 대표팀 코치의 표현을 빌면 윤성빈은 ‘냉정하게 도전을 즐기는 선수’다. 브롬리 코치는 “윤성빈은 썰매에 올라타서도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어떻게 빠르게 내려갈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모든 걸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보니 운동선수들에게 흔한 징크스나 루틴도 없다. 그는 “루틴을 만들면 그게 깨졌을 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러 루틴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를 되돌아보는 일기도 쓰지 않는다. 훈련 이외의 시간에는 스켈레톤을 내려놓고 축구경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스켈레톤 2차 월드컵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당시 윤성빈.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스켈레톤 2차 월드컵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당시 윤성빈. [AP=연합뉴스]

대신 훈련을 할 때와 경기에 나설 때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윤성빈에게 ‘플랜B(원계획이 무산됐을 때를 대비한 계획)’도 없다. 그는 “가장 잘 타는 상황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만 하고 경기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커브가 많아) 까다로웠던 트랙이었기에 구간 하나하나 미숙했던 부분에 신경을 쓰며 실수 없이 주행하려 고했다. 그게 좋은 결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평창올림픽에서 맞붙게 될 두쿠르스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한결같다. 그는 지난해 3월 “2인자는 말이 없다. 1위가 될 때까지 묵묵히 정진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분석한 두쿠르스의 장점은 경험이었다. 그는 “두쿠르스를 넘어서려면 내가 더 많이 노력하고 부딪히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두쿠르스를 압도한 이번 시즌에도 도전자의 입장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용(40)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은 “윤성빈의 기량은 이제 세계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이제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따라잡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예전처럼 1위를 쫓아간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충분히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빈은 "속으로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생각할 때도 있지만, (썰매에 오르면) 몸이 반응한다. 지금은 오로지 금메달에 대한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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