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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아이 캔 스피크’ … 현대사 끄집어낸 충무로, 다시 담론 중심에 서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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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6면

[CRITICISM] 2018 한국 영화, 어디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 [사진 CJ E&M]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 [사진 CJ E&M]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사진 리틀빅픽처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사진 리틀빅픽처스]

큰 변화를 겪은 2017년을 뒤로 하고 이제 새해다. 작년에 이룬 변화를 어떤 방향으로 지속시킬지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위기 요소는 잠재우고,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며, 부당하게 사라진 것은 회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건 질문일 것이다. 한국영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모순은 무엇인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것인가, 영화라는 매체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영화의 담론은 무엇인가?

80년대 후반 이래 각종 담론 #한국 영화 르네상스 이끌어 #2010년대 들어서며 담론 실종 #비슷한 범죄스릴러물만 범람 #최근 역사를 다룬 영화 강세 #세대간 대화와 소통 촉매 역할 #이젠 미래지향적 이야기 필요 #독과점 문제 해결책 모색해야

‘담론’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쟁점’, 쉽게 풀면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영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며,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일 수 있다. 여기서 새삼 당황하게 된다. 어느새 영화계에선 담론다운 담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슈는 있지만 담론은 없다. 표면적인 문제 제기만 반복된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위기론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독과점 횡행, 수익성 악화, 장르 편중, 착취 구조, 양극화, 인프라 부족…. 진단의 지점은 다양했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근본 원인은 한 가지다. 바로 담론의 상실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영화는 공허한 상태에서 점유율 50퍼센트를 넘나들며 매년 일희일비하는 표류 상태를 겪었다.

80년대 ‘직배 반대’, 90년대 스크린쿼터 논쟁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1992년에 제작한 한국 기획영화의 시초인 ‘결혼 이야기’. [중앙포토]

1992년에 제작한 한국 기획영화의 시초인 ‘결혼 이야기’. [중앙포토]

뒤돌아보자. 몇 가지 흐름이 있었다. 먼저 저항의 역사다. 본격적 시작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직배 반대 투쟁이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직접 한국 시장에 영화를 배급하게 되자 충무로는 들끓었다. 감독과 제작자 중심의 반대파, 극장업자 중심의 찬성파, 국산 영화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반성파 등 여러 의견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격렬한 충돌’이었다.

그 불씨는 1990년대 스크린쿼터 논쟁으로 이어졌다. “한국영화를 지켜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세계화’로 대변되는 개방의 물결이 충돌했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가 과연 보호해야 할 문화인지, 그 가치에 관해 물었다. 그 대답으로서 스크린쿼터 문제는 자연스레 ‘종 다양성’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영화는 산업 이전에 예술이며, 여러 취향은 공존해야 하며, 개인의 창조성은 공적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생겼고, 대통령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또 하나의 담론은 산업에서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한국영화의 토대는 현대화되었다. 토착 자본 중심이었던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은 사라졌다. 대신 현실에 기반을 둔, 트렌드를 면밀히 포착한, 기업 자본에 의한 영화가 등장했다. 대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금융 자본도 가세했고 국내외 펀드가 조성되었다. 이때 ‘쉬리’(1999)가 터졌고, “파이를 늘려야 한다”는 강제규 감독의 말은 금과옥조가 되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한국영화의 토대는 완전히 바뀌었다.

2000년대 질적 상승 ‘웰메이드 영화’ 등장

영화들도 새로워졌다. ‘결혼 이야기’(1992)가 포문을 연 이른바 ‘기획영화’는 관습적인 영화 제작을 지양하고, 관객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이는 장르 영화를 내놓았다. 로맨틱 코미디가 각광 받았고, 페미니즘 이슈가 등장했다.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 영화에 담기기 시작했다. 홍상수는 일상성을, 김기덕은 야생성을 화두로 던졌다. ‘영화광 문화’도 빅뱅을 맞이했다.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일본 영화가 개방되었다. 문화 담론의 변방에 있었던 영화는 어느새 중심부로 진입했다.

1990년대를 중심으로 폭발한 영화 담론의 흐름들은 2000년대에 만났다. 그 성과가 바로 ‘한국영화 르네상스’다. 이것은 단지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흥행작이 쏟아지는 가시적 성과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제작자와 감독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작품의 질적 상승이 있었다. 이때 ‘웰메이드 영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시나리오부터 테크놀로지, 연출력, 마케팅까지 손색없는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된 것이다. 결과는 좋았다. 다양한 장르가 꽃을 피웠고 시장 규모는 급성장했다. 모든 것이 완성된 듯했다.

그리고 2010년대가 되었다.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축적되었던 수많은 담론과 그 논리와 영향력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남은 것은 ‘독과점’과 ‘1000만 영화’라는, 사실 담론이라 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두 용어였고,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독과점을 통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고, ‘1000만 영화’는 동력이 되어 영화산업을 이끌게 되었다. 여기엔 반드시 다른 영화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힘의 논리에 의한 흥행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영화는 1000만 관객 이상 동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1000만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산업적 침체로 여긴다. 모든 것은 수치로 환산되고, 그 중 ‘1000만’은 가장 강력한 숫자가 되었다. 담론이 사라진 한국영화계의 민낯이다.

작품 자체도 힘을 잃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 영화는 단지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관객들의 수많은 의견과 이야기가 오가는 담론의 장이었다. 이것은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영화의 서사가 점점 역동성을 잃어가면서 서로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영화는 패턴 속에 갇혔다. 최근 범죄영화의 범람은 그 신호일 것이다. 이상한 신념 속에서 ‘몰빵’을 하듯 특정한 테마와 장르의 영화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위안부 문제, 광주 민주화 항쟁 등 다뤄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아직은 영화가 대중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여지 때문이다. 대표적인 건 역사를 다룬 드라마들이다. 최근 한국영화가 역사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종종 한계를 드러내고 스펙터클이나 장르적 관습과 결합되기도 하지만, 영화가 담론의 힘을 되찾으려는 절박한 노력처럼 느껴진다. 위안부 문제나 광주 민주화 항쟁 등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과거다. 여기서 ‘아이 캔 스피크’나 ‘택시 운전사’ 같은 영화들은 현재의 관객과 역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며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낸다. ‘1987’은 그 결정판 같은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SNS나 각종 저널을 통해 파생된 수많은 이야기는 개인의 감상을 넘어 어떤 거대한 이야기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한 세대 전에 일어난 민주화의 생생한 현장은 최근 우리가 겪은 경험과 직결되고, 이 과정에서 ‘1987’은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겪는, 영화를 통해 담론이 재구성되고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지는 경험이다.

한동안 담론의 역사가 중단되었다면, 이젠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들이 한국영화에 필요하다. 통일된 의견으로 하나 될 순 없을 거다.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대신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작년부터 제기된 젠더 이슈는 현실화되어야 하며, 좀 더 다양한 상업영화가 나와야 하고, 저예산 독립 영화의 배급 시스템도 개선되어야 한다. 10년 가까이 지적만 되었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 방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다. 한쪽에선 비판하고, 한쪽에선 외면하면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젠 생산적인 공존을 위해 만나야 하고 그 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자본의 마인드도 더 유연해지고 용기를 내어 새로움에 도전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지난 7년 동안 한국영화 점유율 50퍼센트대를 유지시켜 준 관객들의 의리에 대해 영화계가 돌려줘야 할 최소한의 보답일 것이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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