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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실·할랄식당 … 무슬림 배려해 8억 명 친구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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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시장, 남쪽으로 가자 <중> 무슬림 프렌들리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무슬림 기도실에서 인도네시아 여성이 기도하고 있다. 무슬림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무슬림 프렌들리’ 서비스다. 이는 동남아·남아시아에 사는 8억 무슬림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이다. [뉴시스]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무슬림 기도실에서 인도네시아 여성이 기도하고 있다. 무슬림이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무슬림 프렌들리’ 서비스다. 이는 동남아·남아시아에 사는 8억 무슬림의 마음을 사로잡는 핵심이다. [뉴시스]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부탄 등 남아시아 국가와 유대를 강화하려면 그 지역과 주민의 특성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현지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이룰 수 있다.

한국 찾는 무슬림만 연 100만 명 #‘무슬림 프렌들리’가 세계 트렌드 #사라예보·타이베이 등에 전용 호텔 #술 안 팔고 바닥에 메카 방향 표시 #교토는 할랄식당·숙소 안내 서비스 #배려 땐 한류 넘어 ‘친구 한국’ #중국 대신할 새 협력국 만들어야

동남아와 남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다민족·다종교 사회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무슬림(이슬람교도) 인구가 압도적이다. 어느 나라건 숫자가 많든 적든 무슬림이 거주한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가 몰려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6198만 명 중 87.2%인 약 2억2840만 명이 무슬림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다. 2억1010만 인구의 96%인 약 2억170만 명이 무슬림인 파키스탄이 그 다음이다. 힌두 국가로 알려진 인도에도 13억3259억 인구의 14.2%인 약 1억8900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한다. 방글라데시에도 인구의 90.4%인 1억4800만 명이 무슬림이고, 말레이시아에도 인구의 91.3%인 약 2900만 명이, 가톨릭 국가로 알려진 필리핀에도 인구의 5.6%인 약 600만 명이 무슬림이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8억 명이 넘는다. 불교 국가로 알려진 태국·미얀마·부탄에도 무슬림은 소수나마 존재한다.

이들 나라와 교류를 확대하려면 이들의 공동체 신앙인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관용, 그리고 배려가 절실하다. 이 지역 주민을 껴안기 위한 효과적인 방식이 ‘무슬림 프렌들리(Muslim Friendly)’라는 이슬람 친화적 접근법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무슬림이 종교적 신념에 방해됨이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동남아와 남아시아 지역 주민이 한국을 친구로 여기게 하려면 필수적인 서비스다. 대만무역국의 리관즈(李冠志) 부국장은 “대만은 동남아·남아시아 18개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신남향정책’을 추진하면서 ‘무슬림 프렌들리’ 정책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에서 종교적·문화적으로 존중받았다는 기억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간 무슬림은 ‘신남향정책’의 성공을 위한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무슬림 여행객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을 찾은 무슬림 여행객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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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프렌들리는 현재 전 세계 여행업계를 휩쓸고 있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유럽 발칸반도 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브리스틀 호텔은 유서깊은 서구식 호텔이다. 얼마 전 이곳을 찾았더니 입구에 ‘무슬림 프렌들리 호텔’이라는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객실에 들어갔더니 바닥에 무슬림이 하루 다섯 차례 기도하는 이슬람 성지 메카 방향이 표시돼 있었다. 호텔에는 디스코텍 같은 유흥시설이 전혀 없었으며, TV 채널 안내판에는 ‘저희 호텔은 성인 방송은 일절 제공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호텔 식당에 갔더니 ‘할랄’이라는 표시가 알파벳과 아랍 문자로 적혀 있었다. 할랄은 ‘허용된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무슬림들이 율법에 어긋나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인증받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표시다. 식당 메뉴에는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는 전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저희는 ‘무슬림 프렌들리’ 호텔이라 ‘알코올 프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나라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투자가 활발해지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무슬림 프렌들리 정책을 펴고 있다.

무슬림 프렌들리는 무슬림 국가나 무슬림 이민자가 많은 유럽에 국한하지 않는다. 대만의 타이베이에 있는 320객실의 5성급 호텔인 타이베이 마리오트 호텔은 철저한 무슬림 프렌들리 호텔로 운영하며 동남아와 남아시아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었다. 직원들을 무슬림 고객의 요구에 맞출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하고 있었다. 프런트 직원은 호텔에서 가까운 모스크를 묻는 고객의 질문에 상세한 안내를 해 준다. 하루 다섯 차례 기도하는 무슬림의 편의를 돌볼 수 있도록 남녀 기도실도 호텔 안에 별도로 설치됐다. 프런트에 요청하면 기도 시간을 전화로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무슬림들이 종교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할랄 중화요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두부 요리는 물론 이슬람식으로 도축해 ‘할랄’ 인증을 받은 육류를 이용한 중화 할랄 요리가 다채롭게 제공됐다. 객실과 미니바에 제공되는 모든 스낵과 음료수는 할랄 인증을 받은 것이다. 할랄 음식으로 이뤄지는 연회도 요청할 수 있다.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재료를 사용한 할랄 푸드를 맛보는 모습. [중앙포토]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재료를 사용한 할랄 푸드를 맛보는 모습. [중앙포토]

일본의 인기 관광지인 교토시는 최근 동남아와 남아시아 등지의 무슬림 관광객을 겨냥해 ‘무슬림 프렌들리 교토’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교토에서 ‘무슬림이 기도할 수 있는 무료 공간’ ‘할랄 음식을 찾는 법’ ‘무슬림 프렌들리 숙소’를 찾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무슬림이 기도할 때 향하는 메카 방향을 모바일로 알려주는 키비야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국관광공사도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100만 무슬림 여행객을 위한 ‘무슬림 프렌들리 정책’을 추진하며 식당과 숙소 인증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무슬림들은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이는 한류와 정보기술(IT) 제품 등으로 높아진 한국의 이미지에 무슬림을 잘 이해하고 따뜻하게 접근하는 ‘친구’라는 이미지를 보태준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국이 동남아와 남아시아 국가를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협력 지역으로 개척하려면 보다 넓고 깊은 무슬림 프렌들리 정책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이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국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재팀=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최익재·강혜란·홍주희·김상진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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