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에 있는 목욕탕과 찜질방의 소방 설비가 불량한 것을 나타났다. 2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제천 복합상가건물(‘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참사 직후임에도 다중이용시설을 관리하는 업주들의 소방안전 불감증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천소방서 비상구에 의자·테이블 적재, 유도등 고장 다수 적발 #2층 비상구 문여니 낭떠러지…10년 넘은 소화기 그대로 방치
4일 제천소방서에 따르면 소방서와 제천시는 지난달 27일과 29일, 지난 2일 등 3일 동안 목욕탕과 찜질방이 있는 제천지역 복합 건축물 9곳을 대상으로 합동 소방 점검을 했다. 국가화재안전기준(NFSC)을 토대로 소화기구·자동화재탐지설비·자동소화장치 등 소화설비 작동여부, 피난기구 확보 등 크게 4가지 항목을 점검했다. 제천소방서 예방안전과 직원 3명과 제천시청 안전총괄과 직원 1명이 점검했다.
점검결과 양호 판정을 받은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7곳은 화재 참사가 난 복합상가건물(‘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처럼 비상구에 물건을 적재하는 바람에 탈출로 구실을 못하는 등 법규 위반 사항이 수두룩했다. 1곳은 현재 임시 휴업 중이어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 당시 2층에서 2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2층 비상구는 목욕 용품을 보관하는 철재선반에 가려져 있어 피난유도로 기능을 못했다. 이번 점검에서 비상구와 비상계단에 대한 지적사항이 많았다.
지하 1층에 있는 A목욕탕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비상구와 비상계단이 의자와 테이블, 집기류 등이 쌓여 있었다. 점검을 담당한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비상구 근처에 사람이 통행하기 어려울만큼 집기류가 놓여있었다”고 말했다.
2~3층을 쓰고 있는 B목욕탕은 옥상에 컨테이너로 된 가건물을 설치해 대피 장소로 쓸 수 없었다. 불이 났을 경우 다수의 사람이 대피하기 어렵다는 게 점검단의 판단이다. 소방당국은 비상구를 가로막아 제기능을 못하게 한 업소에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한 업소는 건축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 제천시에 통보했다.
C목욕탕은 2층 비상구 문을 열면 계단이 없고 바로 낭떠러지로 연결됐다. 대신 비상구쪽에 접이식 피난사다리가 있었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피난 사다리가 있었지만 낡고 오래된 것이라 자칫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 업주에게 고정식 사다리로 교체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나머지 복합상가건물에서는 소화기와 피난 유도등, 자동화재탐지기 오작동 등 지적 사항이 나왔다. 10년 넘도록 소화기를 바꾸지 않거나 압력이 떨어진 소화기를 건물 내에 방치한 곳이 있었다. 정전시 비상구로 안내하는 기능을 하는 피난 유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자동화재탐지기가 불량인 것도 지적됐다. 한 목욕탕은 방화커튼 20개 중 1개가 불량했다. 스프링클러 오작동은 발견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기간 내 지적 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해당 업주에게 벌금을 추가 부과할 방침이다.
충북도 소방본부는 제천 화재 참사를 계기로 오는 5일까지 도내 목욕장 및 찜질방 시설 116곳을 대상으로 소방특별조사를 하고 있다.
중점 점검 내용은 비상구·피난통로 상 장애물 설치 및 폐쇄 행위, 소방시설 정상 작동 여부, 수신반 전원 차단 및 소화설비 밸브 폐쇄 행위, 소방안전관리자 업무 수행 등이다. 여성 소방공무원 점검반을 구성해 여성 전용 공간도 예외 없이 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제천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목욕장 및 찜질방 시설 조사 결과는 오는 8일께 나온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이번 안전점검을 통해 목욕탕과 찜질방 등에 대한 화재 위험 요인을 사전 제거하는 등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제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