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UAE 특사 방문목적의 의문을 풀어줄 ‘키맨’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43)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이르면 다음 주 후반 한국을 찾는다. 그는 청와대가 “각종 의혹은 칼둔 청장의 방한 이후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 인물이다.
2009년 12월 UAE 원전 수주 계약을 전후로 한국과 UAE 양국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이를 가늠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회고록은 원전 계약 성사 과정에서 ‘갑’이었던 UAE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이하 무함마드 왕세제)와 ‘을’이었던 이 전 대통령 간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2009년 11월 초부터 12월 27일 계약이 결정되기까지 50여 일간의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정리된 회고록이지만 양국이 서로에게 무엇을 원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정황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초 “UAE는 ‘원전을 프랑스에 주기로 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참모들은 UAE 무함마드 왕세제에게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하는 이 전 대통령을 말렸다. 자존심을 접고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다는 게 이 전 대통령의 회고다.
“기왕에 안 된 것, 전화한다고 해서 더 손해볼 것도 없지 않아요? 그리고 중동 왕족들이 좀 그런 면이 있어요.” (『대통령의 시간』516p)
2009년 11월 6일 이 전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제와 통화했다. 사절단 파견과 ‘형제 국가’ 관계를 제안한 그에게 왕세제는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직후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지시를 했다.
“국방부 장관, 경제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포함해 대표단을 빨리 꾸려보세요. 종합적인 안을 만들어야 해요. 기업 그만두면서 세일즈는 이제 끝났나 했더니 또 하게 되네…”(『대통령의 시간』519p)
5일 뒤인 11월 11일 무함마드 왕세제는 “입찰을 연기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그는 “한국이 교육, 기술, 군사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는 긍정적인 신호도 보냈다. 같은 달 20일엔 “양국 관계가 안보와 안정 그리고 우리 자손들까지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경쟁국 프랑스가 대응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발 빠르게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실무자들이 협의문을 갖고 UAE를 방문해 협의했다. 12월 10일엔 무함마드 왕세제가 “이 전 대통령께 직접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고 싶다”며 UAE 방문 날짜를 정하자는 요청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12월 26~27일 UAE를 방문했다. UAE 대통령(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은 정상회담에서 원전 건설을 한국에 맡기는 수주 결정을 발표한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과 UAE는 원전 이외에도 ‘군사ㆍ의료 분야에 대해 포괄적 협력 관계’를 맺게 됐다”고 회고록에 적었다.(『대통령의 시간』524p~525p)
이후 무함마드 왕세제는 한국을 방문해 특전사의 훈련을 지켜본 뒤 협력을 요청했다. 2010년 12월부터 특전사의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요원들이 UAE로 파병됐다.
무함마드 왕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에 UAE의 원유 600만 배럴을 한국 저장고에 두기로 합의했고, UAE의 유전 개발권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 전 대통은 이를 ‘큰 선물’이라고 적었다. ‘100년의 우정’ ‘형제의 관계’를 만들었기에 얻게 된 성과라는 설명이다. 2012년 11월 21일 UAE 원전 착공식에 참석한 뒤 만찬 자리에서 무함마드 왕세제는 이 전 대통령에게 이런 말도 했다.
“한국에서 조금 있으면 선거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을 한 번 더 선출할 수 있다면 저희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힘을 쓰겠습니다.” (『대통령의 시간』529p)
이 전 대통령은 “왕세제로부터 형제의 우정을 느꼈으며, 퇴임 후인 2014년 11월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과 함께 아부다비를 방문해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