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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기록된 UAE 원전 수주 ‘막전막후’

중앙일보

입력

‘아랍에미리트(UAE) 의혹’이 새로운 국면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UAE 특사 방문목적의 의문을 풀어줄 ‘키맨’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43)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이르면 다음 주 후반 한국을 찾는다. 그는 청와대가 “각종 의혹은 칼둔 청장의 방한 이후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 인물이다.

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달 10일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제(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원전 책임자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원자력공사 이사회 의장(붉은 원)이 배석했다. [사진 샤리카24시 영상 캡처]

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달 10일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왕세제(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원전 책임자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원자력공사 이사회 의장(붉은 원)이 배석했다. [사진 샤리카24시 영상 캡처]

2009년 12월 UAE 원전 수주 계약을 전후로 한국과 UAE 양국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이를 가늠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중앙포토]

회고록은 원전 계약 성사 과정에서 ‘갑’이었던 UAE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이하 무함마드 왕세제)와 ‘을’이었던 이 전 대통령 간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2009년 11월 초부터 12월 27일 계약이 결정되기까지 50여 일간의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정리된 회고록이지만 양국이 서로에게 무엇을 원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정황이 나온다.

‘원전 프랑스에 주기로 했다’ 보고에 왕세제 통화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초 “UAE는 ‘원전을 프랑스에 주기로 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통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참모들은 UAE 무함마드 왕세제에게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하는 이 전 대통령을 말렸다. 자존심을 접고 사업가 기질을 발휘했다는 게 이 전 대통령의 회고다.

“기왕에 안 된 것, 전화한다고 해서 더 손해볼 것도 없지 않아요? 그리고 중동 왕족들이 좀 그런 면이 있어요.” (『대통령의 시간』516p)

2009년 11월 6일 이 전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제와 통화했다. 사절단 파견과 ‘형제 국가’ 관계를 제안한 그에게 왕세제는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직후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지시를 했다.

“국방부 장관, 경제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포함해 대표단을 빨리 꾸려보세요. 종합적인 안을 만들어야 해요. 기업 그만두면서 세일즈는 이제 끝났나 했더니 또 하게 되네…”(『대통령의 시간』519p)

5일 뒤인 11월 11일 무함마드 왕세제는 “입찰을 연기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그는 “한국이 교육, 기술, 군사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는 긍정적인 신호도 보냈다. 같은 달 20일엔 “양국 관계가 안보와 안정 그리고 우리 자손들까지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실무자들이 협의문 들고 UAE 방문

이후 이 전 대통령은 ‘경쟁국 프랑스가 대응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발 빠르게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실무자들이 협의문을 갖고 UAE를 방문해 협의했다. 12월 10일엔 무함마드 왕세제가 “이 전 대통령께 직접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고 싶다”며 UAE 방문 날짜를 정하자는 요청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12월 26일 오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해 모하메드 왕세제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12월 26일 오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해 모하메드 왕세제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대통령은 12월 26~27일 UAE를 방문했다. UAE 대통령(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은 정상회담에서 원전 건설을 한국에 맡기는 수주 결정을 발표한다. 이 전 대통령은 “한국과 UAE는 원전 이외에도 ‘군사ㆍ의료 분야에 대해 포괄적 협력 관계’를 맺게 됐다”고 회고록에 적었다.(『대통령의 시간』524p~525p)

한국전력은 2020년까지 UAE원전 1~4호기 건설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사진 한국전력]

한국전력은 2020년까지 UAE원전 1~4호기 건설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사진 한국전력]

이후 무함마드 왕세제는 한국을 방문해 특전사의 훈련을 지켜본 뒤 협력을 요청했다. 2010년 12월부터 특전사의 최정예 대테러 특수부대 요원들이 UAE로 파병됐다.

‘형제의 관계’라서 추가 선물 줬을까

무함마드 왕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에 UAE의 원유 600만 배럴을 한국 저장고에 두기로 합의했고, UAE의 유전 개발권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 전 대통은 이를 ‘큰 선물’이라고 적었다. ‘100년의 우정’ ‘형제의 관계’를 만들었기에 얻게 된 성과라는 설명이다. 2012년 11월 21일 UAE 원전 착공식에 참석한 뒤 만찬 자리에서 무함마드 왕세제는 이 전 대통령에게 이런 말도 했다.

“한국에서 조금 있으면 선거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을 한 번 더 선출할 수 있다면 저희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힘을 쓰겠습니다.” (『대통령의 시간』529p)

이 전 대통령은 “왕세제로부터 형제의 우정을 느꼈으며, 퇴임 후인 2014년 11월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과 함께 아부다비를 방문해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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