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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절벽 홀로 넘은 르노삼성, 비결은 노사 도시락 미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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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해 부산 신호동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라인에서 ‘SM6’가 생산되고 있는 모습. [사진 르노삼성차]

지난해 부산 신호동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라인에서 ‘SM6’가 생산되고 있는 모습. [사진 르노삼성차]

국내 5개 완성차 업체 판매량은 2015년 약 901만대에서 2016년 889만대, 지난해 820만대까지 떨어졌다. 특히 수출 등 해외판매 감소로 인한 타격이 컸다. 하지만 부진의 늪에서도 살아남은 곳이 있었다. 르노삼성자동차다. 지난해 현대자동차(-6.5%)·기아자동차(-7.8%)·한국GM( -12.2%)·쌍용자동차(-7.8%) 모두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르노삼성(7.6%)만 홀로 성장했다.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는 해외판매 감소 #르노삼성만 지난해 7.6% 성장 #직원·경영진 매주 만나 소통 강화 #공정 개선 → 생산물량 확대 선순환

르노삼성의 수출 증가 비결은 생산성 향상에 있다. 르노·닛산얼라이언스의 전 세계 공장들은 더 많은 생산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생산성을 높여 주요 모델 생산 물량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런 부산공장의 생산성 향상 이면에는 갈등을 멈추고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을 택한 노·사가 있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불과 2013년만 해도 큰 위기에 빠져 있었다. 2010년 연간 27만대 넘게 생산하던 부산공장의 생산량이 몇 년 사이 반 토막이 났고, 그 여파로 공장 직원 80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생산성 순위는 전 세계 르노 그룹 공장 19개 중 13위까지 떨어졌다. 당시 부산공장을 찾은 제롬 스톨 르노그룹 부회장은 “그룹 소속 전체 공장을 평가한 결과 부산공장의 경쟁력은 중간 이하”라며 “효율성 개선이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부산공장 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돌리겠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퍼졌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러나 부산공장은 짧은 시간에 극적 반전을 이뤄냈다. 르노그룹 13위였던 생산성 순위는 3년만인 2016년 1위로 올라갔고, 지난해 10월엔 전 세계 자동차 공장 생산성 지표 조사인 ‘하버리포트’ 평가에서 148개 공장 중 8위에 등극했다. 부산공장의 롤모델이던 닛산의 일본 규슈공장에서 거꾸로 부산공장으로 사람을 보내 비결을 배워갈 정도다. 생산성 향상은 북미 지역 판매 1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닛산 ‘로그’의 물량 확대로 이어졌다.

반전의 비결은 뭘까. 우선 공정을 크게 개선했다. 지난해 말 직접 가본 부산공장에선 정해진 길을 따라 부품을 운반해주는 ‘무인운반차(AGV)’가 쉴새 없이 움직였다. 2014년 도입한 설비다. 이전엔 작업자가 직접 부품박스로 가 필요한 부품을 챙겨 라인으로 돌아왔지만, 이젠 AGV가 필요한 부품을 찾아 작업자 옆에 갖다 준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노·사 관계에서 일어났다. 공장서 만난 현장 직원부터 관리자까지 모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노·사가 힘을 합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부산공장 직원들은 위기를 겪은 이후 파업 대신 생산성 향상을 위해 힘을 보탰다. 현장에서 본 비효율적인 요소를 사 측에 건의하는 ‘숨은 5초 찾기’에 적극 참여해 불필요한 공정을 최소화했다. 경영진 역시 매주 현장 직원들과 ‘도시락 미팅’을 열어 어려움을 들었고, 메신저를 이용해 수시로 소통했다. 부산공장 생산1담당 강준호 이사는 “2016년 2월부터 총 166회 도시락 미팅을 진행했고, 참석한 직원만 누적 기준 1235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AGV 도입 역시 노·사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AGV를 도입하면 생산 라인 곳곳에 있던 부품 박스가 모두 사라진다. 즉 작업자들을 가리던 ‘벽’이 사라져 한눈에 공장 전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 작업자 입장에선 눈치 볼 일이 많아지고, 오히려 일하기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러나 노조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를 감수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다른 업체의 경우에도 무인운반차를 도입하려 했지만, 노조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첨단 장비나 자동화가 아닌, 노·사협력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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