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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서 온 편지|"두개의 얼굴"가진 중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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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박병석특파원】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진의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최근 한국과 중공관계를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차이는 이를 증명하고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유세를 계기로 한국의 보통사람들 마음속에 피기 시작한 중공이라는 장미꽃은 날이 갈수록 붉은 빛을 더하고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보통사람들은 멀지않아 중공은 미국등 선진각국의 보호주의장벽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에 탈출구를 제공해줄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거위」요, 정치적으로도 비적성국 또는 우방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우려까지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에서의 「중공열」과는 달리 중공의 「공식적」인 대한입장은 과거와 커다란 차이점이 없으며 오히려 노태우대통령 취임당일 발표된 평양발 신화사(통신)논평은 상당히 비판적이고 냉담한 것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중공이 한국을 아예 마음밖에 두고있거나 속마음까지 철저히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중공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도와 연구가 제법 활기를 띄고있다는 증거와 사례를 곳곳에서 찾아볼수 있다.
외국인들의 구독이 금지돼있는 신화사(통신)가 하루 약5백만부씩 발행하는 찬카오 샤오시(삼고소식)는 한국정치 정세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도한 외국신문잡지들을 번역 전재하는 경우가 자주있고 또 중공국영 CC-TV(중앙전시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내외신기자회견 모습을 위성으로 받아 방영하기도 했다.
중공의 한국에대한 연구와 관심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지난해 11월중순 중공복건성성도 복주에서 「전국조선경제연구회」가 주최한 「조선(남북한을 포함)문제 세미나」다.
중공전역에서 한국문제를 연구하는 학술계및 경무부(경제무역부)와 외교부관계자 약50명이 참가한 이같은 세미나는 85년을 시작으로 매년 한차례씩 개최됐지만 이 세미나의 내용은 물론이고 개최됐다는 사실조차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어 매스컴에 보도된 일이 없다.
특히 지난해 11월에 개최된 제3회 세미나는 과거 두차례의 세미나가 남북한 경제문제에 국한됐던 관례를 깨고 한국(그들은남조선이라 부른다)의 정치정세까지 논의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당시 한국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여서 그들의 토론내용과 결론은 우리에게 흥미있는 일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준다.
4일간 계속된 이 세미나를 통해 그들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김영삼·김대중씨등 야당후보보다는 집권당 노태우후보의 당선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중공의 한 정통한 소식통이 본 특파원에게 전했다.
그들의 대한인식과 입장의 출발점은 그들 매스컴들이 줄기차게 관심을 표했던 한국의 민주화나 인권등이 아니라 바로 한반도와 한국의 「안정」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중공이 심혈을 기울이고있는 4개 현대화등 그들의 국익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안정이 필수적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군이나 미국등과의 관계를 고려할때 노후보의 당선이 한국과 한반도의 정치정세안정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이같은 견해는 그동안 김대중·김영삼씨나 재야·학생등의 민주화운동및 데모등을 사진까지 곁들여 계속 크게 보도해온 그들 매스컴의 표면적 태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또 이 세미나는 한국경제가 외채부담등 「위기」를 넘기고 「성숙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세미나에서는 4∼5편의 북한관계 논문도 발표됐으나 논문수나 토의시간등에 있어 한국문제가 북한문제보다 월등히 앞서고있다고 정통한 중공인사는 본 기자에게 전하고 있다.
중공은 이같은 세미나의 개최사실조차 비밀에 붙이고 있다.
이같은 중공의 모습은 그들의 대한태도와 접근방식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중성(양면성)과 「로 프로파일」(낮은 목소리)이 그것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한국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하고 겉으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그들의 참된 관심사는 한국 정치정세의 안정에 있는 것이다.
중공이 한국과의 대화채널을 갖자면 미·일·유럽·UN등 세계여러곳이 가능하지만 85년3월의 어뢰정사건에서 보듯이 홍콩의 신화사분사를 창구로 택한 것도 바로 「로 프로파일」이라는 원칙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화사홍콩분사는 실질적인 중공대사관 역할을 하고 있으나 정식 대사관은 아니며 한국총영사관도 「대사관」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십분 인식, 활용한다고 봐야한다.
홍콩에서의 중·한접촉은 「대사급」의 회담도 아니요, 정식 외교관끼리의 담판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격이 낮은 실무접촉이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중공측의 이러한 대한태도와 접근방식은 우리의 대중공전략이 어떻게 수립돼야하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실속없이 흥분하는 한국의 중공열은 마땅히 재검토돼야 한다. 또한 중공인들이 한·중공관계개선과 관련해 강조하는 「형세는 사람보다 강하다」(형세비인강)는 말도 음미할가치가 있다. 사람의 힘보다 시대의 흐름을 강조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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