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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4명 중 1명 '가난' 겪어…모자·조손 가정에선 더 큰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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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여성. 아동 4명 중 1명은 빈곤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운 여성이 가구주인 경우엔 아이가 오랫동안 빈곤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포토]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여성. 아동 4명 중 1명은 빈곤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운 여성이 가구주인 경우엔 아이가 오랫동안 빈곤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포토]

고교 2학년인 A군은 경기도의 한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다. 함께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돈이 없어 집 대신 비닐하우스를 개조했다. 그렇게 산 지 12년째 됐다. A군의 보호자인 조부모는 다리, 허리 등이 불편해서 돈을 벌지 못 한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라 정부에서 생계비만 겨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연탄에 난방을 의존해서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을 칭칭 감아야 잠이 올 정도다. A군은 "냉난방이 잘 되는 곳에 살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신데 1층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가는 게 소원이다"고 말했다.

보사연서 2006~2016년 아동 빈곤 분석 #10년 중 1년 이상 가난 겪은 아동 25.8% #여성 가구주면 남성보다 '장기 빈곤' 8배 #소득 불안정한 무직과 일용직도 빈곤 키워 #어릴 때 가난한 청년, 학력 낮고 고용 불안 #"여성에 일자리 제공, 꾸준한 개입도 중요"

 국내 18세 미만 아동 4명 중 1명은 빈곤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구주가 여성이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면 아이도 오랫동안 가난을 겪는 비율이 크게 뛰었다. 또한 어린 시절의 빈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많았다. 김태완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3일 통계청ㆍ한국복지패널 자료(2006~2016년)를 분석한 ‘아동 빈곤의 특성과 청년기의 영향’ 보고서를 공개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아동의 상대 빈곤율(시장소득 중위 50% 미만)은 25.8%에 달했다. 노동·재산 등 시장에서 버는 소득 순으로 가구를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집의 절반도 못 버는 가구의 아동이 해당된다. 이 기간 동안 아동 4명 중 1명은 1년 이상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 의미다. 특히 5년 이상 빈곤을 겪은 '장기빈곤' 아동은 7.5%로 집계됐다. 2~4년간 빈곤을 경험한 '반복빈곤' 8.1%, 1년만 가난을 겪은 '일시빈곤'은 10.2%였다.

아동 빈곤 가구의 가구주가 가지는 특성. 상대적으로 여성과 일용직, 무직일 경우 오래 가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료 보건사회연구원]

아동 빈곤 가구의 가구주가 가지는 특성. 상대적으로 여성과 일용직, 무직일 경우 오래 가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료 보건사회연구원]

 특히 가구주가 여성인 모자ㆍ조손 가정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이 더 컸다. 가구주가 남성일 때 아동이 장기빈곤을 겪는 비율은 4.7%에 그쳤다. 반면 여성이 가구주라면 38.5%로 그 8배를 넘었다. 모자 가정의 장기빈곤율은 41.6%, 조손 가정은 45.1%에 달했다.

 가구주의 노동시장 참여 유형도 아동 빈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한 가구의 가구주는 일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31.9%)이거나 일용직(23.4%)인 경우가 많았다. 여기엔 일용직이나 계약직, 무직으로 내몰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여성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용직은 빈곤을 겪지 않는 비율이 87.6%로 훨신 높았다. 김 연구위원은 "아동 빈곤 가구는 낮은 소득뿐 아니라 불안정한 거주 환경과 주거 빈곤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릴 때 가난을 겪은 청년은 고졸 이하인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자료 보건사회연구원]

어릴 때 가난을 겪은 청년은 고졸 이하인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자료 보건사회연구원]

 어린 시절의 가난은 그때로만 끝나지 않고 성장 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빈곤을 겪어본 청년(18~28세 기준)은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고, 고용 상황도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이상 가난을 경험한 청년의 최종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는 50.6%로 절반을 넘었다. 형편이 어려운 집의 청년은 고등학교나 그 아래에서 학업을 마치는 경우가 흔하다는 뜻이다. 반면 비빈곤 청년층은 고졸 이하가 10명 중 2명에도 미치지 못 했다(18.6%). 상용직으로 일하는 비율도 7.7%(장기빈곤층)와 21.8%(비빈곤층)로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이유도 갈라졌다. 비빈곤층 청년들은 학업 중이거나 진학·취업 준비 등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경우가 많았다. 빈곤 경험층에선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했거나 일할 의사가 없는 청년이 상당수였다. 김 연구위원은 "아동 빈곤 문제를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동 빈곤은 특히 모자 가정이나 조손 가정에서 두드러졌다. [중앙포토]

아동 빈곤은 특히 모자 가정이나 조손 가정에서 두드러졌다. [중앙포토]

  연구팀은 구조적인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아동 빈곤 가구의 가구주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공형ㆍ복지서비스형 일자리를 활성화해 취약 계층 여성들이 적극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가구주는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아이 돌봄서비스가 동반돼야 한다고 봤다.

추운 겨울 보내는 빈곤 아동들

 빈곤 아동이 청년이 되어서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사전 예방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초ㆍ중ㆍ고교 시기부터 빈곤 아동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보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아동 적성에 맞춰 마이스터고 등 성인이 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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