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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감독상' 리안 감독의 내면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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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카데미 감독상 발표 직후 객석에서 축하를 받고 있는 리안 감독. 왼편에서 박수치는 사람이 부인 린후이자(林惠嘉)다. [로이터=뉴시스]

리안(李安) 감독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카우보이의 동성애를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가장 미국적인 소재, 보수적인 주류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동성애로 미국영화계의 찬사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곧 리안 자신의 내면세계다. 그는 1954년 대만 중부 조그만 도시 핑통에서 부모 모두 교육자인 가정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범한 시골소년의 행복한 어린시절은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명문 고교(대남일중)에 입학하면서 달라진다. 리안은 아버지의 권위와 후광이 벅찬 만년 열등생이다. 대학입시에도 두 번이나 낙방한 뒤 겨우 예술전문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리안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해방감을 맛보았지만, 전통적 사고를 지닌 교장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

이런 부자관계 때문에 리안은 평생 집을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모순된 정서를 갖게 된다. 위대한 아버지의 인정을 갈망하는 열등생 아들의 심리장애가 단적으로 나타난 일화가 있다. '와호장룡'으로 2001년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촬영상 등 4개부문을 석권한 직후다. 문자 그대로 금의환향한 리안은 "총통의 환영식보다 모교에서의 연설에 더 긴장했다"고 말했다. 교장 아버지가 섰던 대강당이 그에게는 너무 컸다.

아버지는 아들이 유학 후 고국 대학교의 강단에 서기를 바랬다. 아들의 꿈은 달랐다. 리안은 78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연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생물학을 전공하는 대만 여학생을 만나 결혼했다. 부인은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할리우드의 문턱은 동양계 감독지망생에게 너무 높았다. 리안은 6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야 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도승같은 인내를 요구한 시절이었다. 리안에게서 풍기는 정적이면서도 강한 힘은 주부생활 동안 키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와호장룡'에서 최고 경지의 무예를 닦은 리무바이(저우룬파)가 보여주는 범접하기 힘든 고고한 외유내강의 분위기 같다.

불효에 대한 죄책감은 리안의 영화에 일관된 '억압'의 기조로 드러난다. '아버지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초기작 '쿵후선생''결혼피로연''음식남녀'는 모두 리안의 마음에 응결된 효의 문제다. 특히 세계적 호평을 받은 '결혼피로연'은 미국에 유학온 대만 출신 동성애자가 부모를 위해 가짜 결혼식을 올리는 얘기다. 동성애 소재를'브로크백 마운틴'과는 다른 각도에서 다룬다. 전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가 억압의 기초가 된다면, 후자에서는 사회규범에 위배되는 원초적 사랑의 갈망에서 억압이 시작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 중에도 과묵하고 보수적인, 그래서 더 상처받기 쉬운 에니스(히스 레저)의 모습이 리안 같다. 두 남자의 사랑은 억제되었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억압의 정서가 있었기에 리안은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회귀(回歸)를 뜻하는 '브로크백'은 실제 지명이 아니다. 리안은 이성과 감정, 억제와 본능의 충돌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었던 듯하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께 이 영화를 바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도 이제는 기나긴 오디푸스 컴플렉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났기를, 앞으로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를 빈다.

호정환 (대만 중국문화대 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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