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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에게 소환당하는 교사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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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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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한 장면. 에인션트 원이라는 정신적 지도자가 스트레인지의 몸을 한 손으로 퍽하고 가격하자, 순간 스트레인지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에인션트 원은 스트레인지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고자 그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제 앞으로 앉으세요”로 시작 #작심한 듯 질타에 자존심 손상 #학생은 욕설, 학부모는 “증거 있냐” #실추된 교사 권위 바로 세워야

장면이 바뀌어 4년 전 어느 중학교 교실. 교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던 3학년 남학생에게 일갈을 가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일어나 나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나는 순간 붕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영화 속 스트레인지와 나의 차이점은 가격한 자의 의도가 아닐까. 나의 어깨를 때린 아이는 몇 시간이 지난 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주위 친구들에게는 “선생님이 짜증나게 해서 때렸다”라고 자랑스럽게 소문을 냈다. 그 학생은 선도위원회에 회부되긴 했으나 졸업이 코앞이라는 이유로 교내봉사 며칠과 반성문 쓰기의 벌을 받았을 뿐이었다.

참고로 나는 특성화고에서 8년, 중학교에서 12년의 교직 경력이 있다. 그런데 공립중학교는 지금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방의 특성화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나는 많은 험악한 일을 겪었지만 그런 불상사들이 지금은 중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일들의 기저에는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학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다.

올해 2학기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엉엉 울었다. 그날 학부모 한 분이 학교에 찾아와 “여기 제 앞으로 앉으세요”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작심한 듯 나를 질타하고 갔다. 그 학부모는 몇 달 동안 다른 학부모와 갈등 아닌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불만이 참 많았었던 것이다. 난 “억울하다”고 항변했지만 손상된 자존심은 눈물로 연결됐다.

2017년은 교직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공립중학교 교사로서 험난한 일을 겪은 한 해였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와 관련된 사안도 있었고 그로 인해 교육지원청에 민원이 접수돼 담당 장학사와 면담도 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만만히 보았는지 한 반의 수업이 엉망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교원평가인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서술형 평가에서 “선생님의 능력 부족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한 아이는 대놓고 면전에서 나에게 “(선생님의 행동은) 어이없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나를 교육지원청에 신고한 학부모나 나에게 어이없다고 말한 아이의 부모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물론 교사로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잘못을 가리기 앞서 항의를 받는 순간 해당 교사는 엄청난 정신적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2009년 가을에 한 아이를 선도위원회에 회부한 적이 있다. 그 아이가 나에게 욕설을 하며 대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아이의 어머니가 지역 교육위원회의 어떤 위원에게 말을 했고, 이로 인해 한동안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그러자 주위 선생님들이 선도위원회에 회부한 일을 철회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난 철회하지 않았다. 이런 요구에 그냥 굴복한다면 나에겐 교사로서의 자부심도, 내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교사를 누가 좋아할까. 무난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학교라고 다를 수 없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권위가 실추된 지 오래다. 잘못한 행동을 지적하면 불량한 아이들은 교사 면전에서 욕설을 하거나 심지어는 협박까지 한다. 그리고 해당 학생의 학부모가 자기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에서 해결하라”고 항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심지어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는데 그런 증거가 있느냐”며 공격적으로 나오기까지 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소환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기가 확 꺾인다. 기가 꺾인 교사들은 “학교가 제일 만만하지”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사의 수업이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이기는 힘들다. 우리 교육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실추된 교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나지영
전주양지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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