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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무심한 한국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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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서 정부 부처의 고위 관료를 찾아갔다가 3분 만에 쫓겨났어요. 단지 행사를 설명하러 갔을 뿐인데….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사람들, 역사에 죄를 짓고 있어요."

지난달 31일 오후 일본 지바(千葉)현 하치요(八千代)시의 관음사에선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자 80주년 추모 행사'가 열렸다. 한국에서 온 문화예술인 40여명을 포함해 4백여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 측 인사는 한명도 없었다. 원로 극작가 김의경(金義卿)공연문화산업연구소 이사장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씁쓸한 표정으로 건넨 말이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추진위원회' 관계자도 거들었다. "주일 대사관.문화원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행사에 대한 문의조차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사건을 외면한다고 탓하면 뭐해요. 우리 정부조차 관심이 없는데…." 또 다른 참석자의 말이다.

반면 이날 참석했던 한국인들은 뜻있는 일본인들을 고마워했다. 연극인.지바 시민단체와 개인 등 70여명은 그 자리에 참석해 추모공연까지 했다.

金이사장은 "관음사에 18년 전 세워진 조선인 위령종의 종루 보수를 위해 모금운동을 했는데, 일본인들이 68만6천엔(약 6백90만원)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주일문화원 관계자는 추모행사에 가지 못한 이유로 "다른 행사가 겹쳐서…"라고 밝혔다. 주일대사관 측은 1일 오전 한국민단이 주최한 추모행사에 '형식적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한국 정부는 80주년을 맞아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한국 정부가 우리의 역사를 잊으면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그런 정부가 어느 나라의 정부에 성의있는 태도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오대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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