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30개월 외국인들 "못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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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0개월 동안 계속되는 엔고(엔화강세)로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 외교관들이 아우성이다. 85년에는 미화 1달러에 2백60엔 하던 것이 지금은 이의 절반인 1백30엔 대에 머물러 있으니 비명을 지를 만도 하다.
작년 동경에 주재하고 있는 우간다대사관이 너무 높이 치솟은 엔고로 집세조차 치를 수 없어 북경으로 철수한데 이어 최근에는 그리스 외교관들이 엔고를 이유로 동경부임을 거부하는 소동이 일어났으며, 이 같은 사태가 다른 나라에도 파급될까 외교가에서 쉬쉬하고 있다.
호주 대사관은 인건비 등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대사관 부지의 절반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은 엔고 궁상을 호소하면서 외교관들을 위한 공동아파트 건설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대부분 아시아 지역에서 온 2만여명의 외국 유학생들은 타격이 커 지난해 10월 방글라데시의 「문일·사피르」(20)라는 학생이 굶어 죽은 시체로 셋방에서 발견된 일도 있다.
멜론 한 덩어리에 50∼60달러씩 하는 판이라 외국인들은 과일 사먹기도 힘든 형편이다.
최근 일본 금속노조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경의 식료품가격(소매기준)은 런던·파리·터론토·뉴욕·로스앤젤레스·프랑크푸르트·뒤셀도르프 등 7대도시의 평균가격보다 무려 50%나 비싸다. 전체 물가의 종합지수는 동경을 1백으로 볼 때 7대도시의 평균지수는 81.2로 동경이 평균 20% 이상 물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고로 달러화의 쓰임새가 매우 헤퍼지자 일본을 들르는 외국인들도 구두쇠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나리타(성전) 공항에 기항하는 미국 각 항공사들의 스튜어디스들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우유 1잔·밥 1공기만을 주문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식당 측은 밥 1공기에 된장국과 갖가지 반찬이 딸려있는 정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겨 자주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화가 치민 미국의 여자승무원들이 돈이 없어 밥 1공기만 팔라는데 그것조차 안 된다니 이런 횡포가 어디 있느냐고 대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묵게될 때는 아예 통조림 등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승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일부 군속들의 부인들은 엔고로 얇아진 달러봉투를 채우기 위해 부업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매춘행위까지 나서고 있다.
침대와 TV 1대가 놓인 비즈니스 호텔은 외국인들로 늘 만원이다. 1박에 7천∼8천엔. 그러나 미화로 환산하면 60여달러로 결코 싼 편이 아니다. 괜찮다 하는 호텔의 숙박료는 2백달러를 넘는다. 체면 때문에 그럴듯한 호텔에 투숙한 외국손님들도 식사는 뒷골목의 라면 집에서 6백∼7백엔(약 5달러)으로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외국 언론기관은 엔고 대응방안으로 부부기자를 파견하는 경우도 있다.
동경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일본인 자신들도 해외에 나가 일제상품을 사들이는 역수입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경=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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