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사망 수습하느라 스트레스로 자살 상사 … 법원, 업무상 재해 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부하 직원끼리 싸우다 한 명이 숨진 사건을 처리하던 회사 상급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측 무리한 지시·징계가 주원인”

한 제조업체의 부장이었던 신모씨는 2014년 9월 중국 출장을 갔다가 부하 직원 2명과 저녁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남아 있던 직원 두 사람은 노래방에서 놀다가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직원 한 명이 넘어지면서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닥쳐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 일로 다른 한 명은 구속됐다.

신씨는 회사 대표에게 사고 사실을 보고하고, 예정보다 하루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신씨는 회사에 사고에 따른 충격을 호소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가 출장 책임자였다는 이유로 다시 중국으로 가서 사고를 수습하라고 지시했다.

귀국 후 그는 급성 스트레스로 2~3개월간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던 중 약을 과다 복용해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는 2014년 11월 징계 인사위원회를 열고 “신씨가 임의로 귀국했으며 관리자로서 대응도 미숙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신씨를 해고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신씨는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했고 이에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김정중)는 신씨 유족 측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신씨가 사건과 관련된 무리한 업무 지시와 징계 해고로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정상적 인식 및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