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복합 상가 화재 참사에서 건물 주인 등 시설 운영 관계자들은 무사히 탈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황한 손님들이 제때 대피할 수 있도록 유도한 직원도 있었지만 일부는 홀로 건물을 빠져나가 목숨을 건졌다. 이 때문에 선장과 선원 등이 먼저 탈출한 세월호 사고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제천시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건물 주인과 관리인은 모두 8명이다. 이 가운데 건물주 이모(54)씨와 헬스클럽 직원 A(46)씨 등 2명은 구조에 나선 민간 사다리차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다. 이씨 등은 연기를 피할 수 있는 7층 발코니로 대피했다가 목숨을 건졌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이씨가 불이 시작된 1층에서 소화전으로 불을 진화하다 불이 거세지자 8층까지 올라가며 대피하라는 소리를 외친 뒤 다시 내려오다 검은 연기에 더 내려오지 못하고 7층 발코니로 대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경찰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2층 사우나 이용객에는 화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알몸 여성이 있을 것을 우려해 문밖에서 대피하라는 소리만 질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가벼운 상처를 입어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명목상 이 건물 소방안전관리인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20조 6항에 따르면, 소방안전관리인은 “화재 발생 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돼 있다.
건물주 이모씨와 직원 등 8명은 모두 무사히 대피 #건물주는 고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외쳤지만 여성사우나 제외 #사우나실 세신사 등 일부 직원도 무사히 빠져 나와 #
이와 함께 1층 안내 데스크에 있던 여성 직원 한 명은 불이 나자 서둘러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층 여성 목욕탕에서 손님들과 함께 있던 세신사 1명 역시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건물 구조를 잘 몰랐다고 했다. 또 기계실 직원 2명도 현장을 탈출했다. 지하 1층 골프연습장 주인은 골프채를 챙겨 떠났다.
결국 불이 난 사실을 제때 알 수 없었던 2층 여성 목욕탕에 있던 20명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인근 상가 한 점원은 “화재 직후 건물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가 자신의 짐을 가지고 급히 빠져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 사우나가 있던 3층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이곳에서 일한 이발사 김종수(64)씨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재 비상벨이 울리고 밖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자 함께 있던 고객 10명을 안전하게 유도했다. 이곳 고객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무사히 탈출했다. 김씨는 혹시 대피하지 못한 고객이 있을까 봐 3층에서 5분 정도 머물다 연기를 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복합 상가 운영과 관련해 위법 사실이 발견되면 관련자들을 모두 입건하고, 추가 조사와 함께 최종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천=김방현·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