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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白<고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3호 29면

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국인들은 고백(告白)과 표백(表白)을 구분한다. 의미는 개인별로 편차가 있다. 그래도 큰 틀에서의 의미 차이는 대략 정리해 볼 수 있다. 고백은 문자 그대로 ‘알리는 것’(告知)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뒤 상대의 선택 혹은 태도에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 대한 상대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계속 좋아할 수도 있다.

표백은 고지 외에도 목적이 하나 더 있다. 표현이다. 자신의 입장느낌태도를 드러내는 일이다. 상대방에게 내가 표출하고 싶은 ‘어떤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 게 표백이다. 고백이든 표백이든 이성(異性)이 주요 대상이 된다. 옛 시에도 절절한 고백이 적지 않다. 송강(松江)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그 자체로만 보면 아름다운 연가(戀歌)다.

이태백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인이 주렴을 걷는다./ 홀로 앉아 깊은 주름 짓는다./ 멀리서도 눈물 흔적 어른거린다./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美人卷珠帘,深坐颦蛾眉, 但见泪痕湿,不知心恨谁.)”

재색 겸비의 당대(唐代) 여류시인 리예(李冶)는 이런 절창을 남겼다.

“산 높고 물 깊다 한들,/ 반 토막 마음인들 막을 수 있으리오./ 바다는 가장자리나 있다지만,/ 그리움은 아득하여 그 끝을 모르네./ 비파 안고 누각에 오르니,/ 누대는 텅 비었고 달빛만 가득하다./ 상사곡 한 자락을 튕기니,/ 비파줄과 창자가 문득 끊어지네.” (人道海水深,不抵相思半, 海水尚有涯,相思渺无畔, 携琴上高楼,楼虚月华满, 弹着相思曲,弦肠一时断)

요즘의 고백은 상사(相思)를 넘었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고백(苦白)’이 늘었다.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갑질’을 무너뜨리려는 함성이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와인스틴의 성추행이 촉발시킨 ‘#MeToo’ 고백은 우리 속의 폭력과 갑질을 태우는 횃불이 됐다. 고백이, 인민재판과 폭력·살육이 난무했던 중국식 문화대혁명이 아닌, 폭력의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우리 안의 진정한 문화대혁명이 되기를 기원한다.

진세근
서경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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