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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깨달라는 전화 뒤 1시간 20분 이상 살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건물 2층의 통유리를 깨 달라는 신고 전화가 있었으나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한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2층 사우나 통유리 구조로 대형 참사 #유족 "유리 깰 시간 1시간 넘게 충분했다" #김부겸 장관 "유리 못 깬 이유 못 들었다"

2층과 3층 목욕탕의 외벽에 있는 대형 강화유리는 29명의 사망자 중 2층에서만 20명이 숨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유족들은 “화재 발생 후 2층 내부에 있던 가족들이 최소 1시간 이상 살아 있었다. 만약 이 사이 유리창만 깼더라도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다. 이날 긴급 출동한 119 소방대가 지붕까지 번진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다. 이날 긴급 출동한 119 소방대가 지붕까지 번진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자들이 이송된 제천서울병원에서 22일 만난 유가족 윤모씨는 “전날 사고 발생 직후 건물 2층에 있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목욕탕인데 앞이 안 보인다. 가스가 올라와서 숨을 못 쉬겠다. 내려갈 수가 없다. 밖에서 유리를 깨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4시 7분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방서에 2층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많다. 불과 가스가 계속 밀려와 밑으로는 내려갈 수가 없다. 밖에서 유리창을 깨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제천시 소하동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발생 신고는 21일 오후 3시 53분 최초 접수됐다. 소방차의 현지 도착 시각은 7분여 뒤인 오후 4시였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굴절 소방차가 설치되는 데에는 30분가량이 걸렸다.

오히려 뒤늦게 달려온 민간업체 사다리 차량이 8층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3명을 구했다. 이에 대해 소방당국은 “기계 고장이 아니라 사고 현장에 주차된 차들로 인해 시간이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특히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2층 사우나는 외벽의 통유리 구조로 인해 유독가스가 내부에 금세 가득 찬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는 대부분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북도 소방관계자는 이날 “1층 화재로 발생한 유독 가스와 연기가 2ㆍ3층의 사우나로 올라왔는데 통유리로 막혀 있는 구조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목욕탕에 갔던 장모와 처형, 처조카 3명을 한꺼번에 잃은 박모씨도 “21일 오후 5시 20분에도 장모님과 통화를 했다. 화재가 발생하고 최소 1시간 27분간 내부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는 얘기다. 이 사이에 구조 당국이 유리창을 깰 생각만 했더라도 이렇게 일가족이 모두 죽는 참변은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유족들은 22일 오전 9시 30분쯤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도 이 같은 내용의 질문이 쏟아졌다. 2층에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가족들이 통유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부인을 잃은 류모씨는 김 장관에게 “바깥에서 소방관이 먼저 유리부터 깨줬으면 전부 다 살 수 있었다. 근데 구조대원들이 유리를 깬 건 오후 6시나 돼서였다. 이미 다 사망한 상태다. 유리만 깨면 다 살 수 있는 거 뻔히 보이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원통해 했다.

22일 오전 9시 30분 제천서울병원을 찾아 화재 유족들과 면담 중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준영 기자

22일 오전 9시 30분 제천서울병원을 찾아 화재 유족들과 면담 중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준영 기자

또 다른 유족 김모씨는 “유리만 빨리 깼으면 모두 다 살릴 수 있었다는 게 유족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장관님은 소방서로부터 왜 유리창 안 깬 건지 보고 들은 거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이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자 김씨는 “장관인데 왜 못 듣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리창을 깨지 않은 것에 대해 제천 소방서 관계자는 “통유리가 강화 유리여서 일반 유리처럼 그냥 깰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에게 도끼가 있긴 하지만, 건물 통유리를 깨기에는 무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 외벽이 빠르게 연소 중이었기 때문에 인접 작업 자체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사고 현장을 보면 알겠지만, 불과 연기가 상대적으로 없는 외벽이 있었다.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면 충분히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애통해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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