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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인도주의적 위기의 마케팅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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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왜 어떤 지역은 주목을 받고 다른 지역은 그러지 못하는가.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로또 당첨과 같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에 있는 지역의 대부분은 매일 복권을 사고 매일 실망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비정부기구(NGO)를 활동하게 하는 이슈도 많지만 반대로 국제적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하는 것도 적지 않다. 한 예로 티베트의 상황은 주목을 받는 반면 비슷한 처지의 위구르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언론의 관심과 NGO의 활동은 분쟁의 역학관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다양한 방법론의 구사, 경험 많은 활동가의 존재, 주요 정책 결정자들과의 접촉 기회 등은 반체제 운동을 강화하고 억압적인 정부에 효과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게 해준다.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반드시 평화나 정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도움이 된다.

앞에서 에겔란트가 제시한 로또 이론은 '사회적 현상에도 운이 작용한다'는 진리를 말해준다. 일부 학자들과 NGO는 이상론을 펼치기도 한다. 의식 있는 언론이 끊임없이 보도하고, 사심없는 NGO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고, 인터넷 웹사이트들이 소통도구가 되어주고, 지원 여부가 도덕성과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등의 활동으로 위기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제사회에서 문제의 심각성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분쟁이 수두룩하다. 1990년대 이후 수백만 명이 희생된 콩고 내전과 수단 내전 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모리타니.인도네시아.콜롬비아 등에서는 분쟁과 인권침해로 희생자가 많았는데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위기 지역이 국제적 관심을 얻는 데는 분명 논리가 있다. 냉혈한의 논리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전쟁.학살.기아.질병 등은 서로 경쟁한다. 국제문제 해결에 주어진 재원이 전 세계의 가난.기아.갈등의 희생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NGO는 돈.인력.시간을 투입할 곳을 조심스럽게 고른다. 이때 기부자들을 만족시키면서 조직을 유지.확장하는 내부 욕구도 고려한다. 이에 따라 지원은 가장 필요한 곳이 아니라 NGO의 기호에 가장 잘 맞는 곳에 집중된다.

분쟁지역의 현지 활동가들은 국제 NGO들의 눈에 띄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이때 적절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e-메일.웹사이트.휴대전화 등을 이용하고 개인적인 로비력을 발휘해 박해받는 사람들의 주장을 알린다. 종종 시위나 무력을 이용해 관심을 끌기도 한다. 소위 'CNN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단체는 '외국의 관객'에게 맞추기 위해 주장.전술.조직 관행과 심지어 정체성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전 세계의 박해받는 집단들은 경제.교육 등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에서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 특히 악명 높은 지도자가 지배하거나 자원이 많은 나라, 국제관계가 활발했던 지역은 NGO의 눈에 띄기 쉽다. 반체제 지도자가 영어를 구사하고 NGO의 관행까지 알면 더욱 유리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운 좋은 소수만이 국제적인 지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클리퍼드 밥 미국 듀케인대 교수

정리=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