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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정부」실증해야한다-이정복<서울대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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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 정부의 정체는 무엇인가. 민주정부인가, 권위주의적 정부인가, 민간정부인가, 군사정부인가, 보통사람들의 정부인가, 그렇지 않으면 특권층을 위한 정부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정부·여당 사람들은 새 정부가 민주·민간 정부이고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기관들은 이러한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상당수의 국민들도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탄생한 정부는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있다.
이에 반해 야측 인사들과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새 정부가 권위주의적 정부이고, 군사 정부이고, 특권층을 위한 정부라고 믿고 있다. 현재 이들의 소리는 새 정부 출범의 경축분위기에 압도되어 있지만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구미제국의 경우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그 정부가 보통사람을 위한 정부가 될 것이냐, 아니냐는 항상 토론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정부가 민주·민간정부이냐의 문제는 「아이젠하워」장군이나「드골」장군과 같은 군 출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여도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물론 야당사람들과 대학생들도 선거를 통해 수립된 정부는 민주·민간정부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야측 인사들, 상당수의 대학생들,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수립된 정부를 보통사람들의 정부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민주정부나 민간정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첫째로 그들이 새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보지 않는 이유는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정부를 탄생시킨 선거가 구미의 선거와는 달리 타락·부정선거였다는데 있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 이유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5·17세력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5·17 세력이 어떠한 절차에 의해서든 정권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세력에 대해 도덕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각에 나타난 구 정부와 새 정부의 연속성은 이러한 거부감을 전혀 완화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그들이 새 정부를 민간정부라고 보지 않는 이유는「아이젠하워」정부나「드골」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의 권력기반이 아직도 상당부분 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36.7%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 민의가 새 정부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권력기반이라고 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세째로 새 정부가 보통사람을 위한 정부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로 청년 지식인들은 굳을 대로 굳어진 정경유착 구조를 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을 위한 파티도 여러번 열었고 또 그의 취임식에도 보통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그것은 정경유착구조를 타파하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새 정부의 정체에 관한 이두가지 견해 중 어느 견해가 옳은가. 이에 대한 판단은 국민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필자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으나 우리 국민 중 상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는 새 정부를 민주·민간정부로 볼 것이고 소외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는 과거와 마찬가지의 권위주의적 군사정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수의 국민들은 새 정부의 정체에 관해 후자의 판단에 경사 하면서도 좀 두고 보자는 유보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고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겠다는 노 대통령의 약속을 한번 기대해 보자는 마음에서 일시 판단을 중지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는 3, 4월이 되면 학원내의 반대운동과 노사분규에 직면하게될 것이다. 또 과거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도 드높아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새 정부는 국회의원선거도 치러야 한다. 새 정부는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통사람을 위한 민주·민간정부임을 보여줘야 할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과연 새 정부는 정치적 반대운동에 대해 민주·민간정부라면 마땅히 보여야만할 관용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새 정부는 노사분규에 있어 보통사람들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새 정부는 부정 부패의 척결을 위해 그자신의 권력기반에 메스를 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새 정부는 여당의 의석이 감소하더라도 금권타락선거가 아닌 공명선거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인가. 새 정부는 과연 그 자신의 과거를 지양할 수 있을 것인가.
노 대통령 취임식 전야에 한 TV채널에서 방영한「톨스토이」의 『부활』에서와 같이 새 정부는 자기부정과 지양을 통해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부활을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고 있으나 우리 국민들은 그래도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새 정부는 이와 같이 순박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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