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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의 세상 담론 <상> 백낙청·정운찬, 한국사회 변화를 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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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 새 흐름

사회:권영빈=한때 친정권이면 보수, 반정권이면 민주화 진보 세력으로 불리던 적이 있었다. 최근 뉴라이트.뉴레프트 등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면서 우리 지식사회도 비로소 기존 논쟁방식에서 탈피해 제3의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운찬=뉴라이트.뉴레프트의 등장을 이념 논쟁의 새 시작이라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과거 어떤 형태로든 제 이름에 값하는 좌우 이념 논쟁을 해 본 적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좌측 이념은 지하에 갇혀 공식적 논쟁의 마당에 떳떳이 나설 수 없었다. 우익 이념 또한 권력의 절대적 보호하에 온실 속 화초처럼 한껏 게을렀다.

'권영빈의 세상 담론'의 첫 손님으로 초대된 정운찬 서울대 총장(왼쪽)과 계간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편집인(가운데). '뉴라이트와 뉴레프트' '황우석 사태와 교육 문제' '민주화 정권 13년'등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을 놓고 진행된 좌담은 3월 1일 오후 2시 중앙일보 권영빈 발행인(오른쪽) 사무실에서 열렸다. 강정현 기자

이제 우리나라에도 뉴라이트.뉴레프트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건설적 이론 대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롭다'는 형용사가 제값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몇 가지 철학적 근본 원리에서부터 복잡다단한 현실 문제에 대한 모든 처방이 연역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추론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좌우 스펙트럼에 세상사가 모조리 포괄돼 자리매김돼 있다는 생각은 형이상학적 독선이다.

백낙청=뉴라이트란 자기네가 붙인 이름이지만 뉴레프트는 내가 알기론 자칭하는 집단이 없다. 일부 언론이 뉴라이트만 띄우기 미안해 그런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뉴라이트의 등장은 발전적이라 본다. 우리나라 우익세력은 그간 시민운동 차원에서 이념논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차하면 빨갱이로 몰아 잡아넣고 국가권력이며 경제력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했다. 담론 세계에서도 유력 신문만 장악하면 대항 세력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이들이 시민운동에 나서겠다니 확실히 발전이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자극과 반성의 기회를 준 점, 진보도 진보해야 한다는 일깨움을 준 것 또한 긍정적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이념 논쟁이나 담론 개발의 출발이라 보기에는 미흡하다. 뉴라이트 담론의 내용을 보면 극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좌파뿐 아니라 중도.중도우파까지도 맘에 안 들면 친북 좌파로 몰아버리지 않나. 친북 좌파라는 용어 자체가 분석을 요하는 거다. 반북 좌파 세력도 상당히 강력하다. 친북 겸 친미를 자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구분해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진보와 보수 양 극단의 소수 세력을 제외하고 나면, 의외로 우리나라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렇게까지 양극화돼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북한, 한.미 관계, 성장과 분배의 문제 등 각 사안에 따라 나름의 생각이 있고, 그를 조합하다 보면 얼마간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그렇더라도 언론이나 일부 세력이 이념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현실의 문제를 이념논쟁으로 풀 수 있는 게 얼마 없지 않은가. 최근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으로 인해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도 재조명을 받고 있는데, 구식 보수와 구식 진보, 신식 보수와 신식 진보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백=언론이 이념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하고 있다는 사회자 말씀에 동의한다. 어쨌거나 양쪽 극단을 떠나 그 중간에 되도록이면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세력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해전사'가 나온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으니 새로 나온 '재인식'은 학문적으로 뭐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재인식'을 아직 안 읽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하지만 앞으로 5년, 10년 뒤에 이 책이 '해전사'만한 역사적 공로를 인정받을지는 학계의 논의에 맡겨두고 언론에선 좀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정=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이념 스펙트럼은 별로 넓지 않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만 봐도 별 차이가 없다. 뉴라이트.뉴레프트는 각기 과거에 대한 불만과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라이트 쪽에서는 정권을 다시 잡아야지 해서 뉴라이트로 가고, 레프트 쪽은 지금 식으로 해선 변혁이 어렵겠다 해서 뉴레프트가 나온 것 아닌가.

세금 문제건 부동산 정책이건, 레프트니 라이트니 하는 걸로 환원시킬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실 파악과 분석을 통해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어떤 관찰.분석.처방을 내놓으면 바로 '레프트적이다''라이트적이다' 하고 나오니 활동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교육의 문제
정운찬 18세 때 한 번 평가로 미래 결정돼선 안 돼
백낙청 '계급장 떼고 말하는 법'서울대 훈련 안 시켜

사회=독재정권하에서 오래 고생하다 보니, 일반인도 부지불식간 두 이념 중 하나를 선택해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과학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어느 한쪽 편에 섰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정=먼저 서울대의 일원이자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구성원 중 한 명이 큰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 말씀부터 드려야겠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윤리의식 부재다. 오늘날 거대과학의 기획은 교수들로 하여금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유를 앗아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연구 이외의 통상 '정치적인 일'에 연루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자칫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어두워질 수 있다. 황 교수에게 젯밥은 성공과 승리의 영광이었을 것이다. 윤리 문제에서 세계적 기준에 못 미치면서 선진국 대접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백=이 문제가 자연과학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자성의 말씀을 인문학도로서 드리고 싶다. 우리 교육제도가 조장하는 성과주의.실적주의에 따른 병폐가 교수사회 전체에 만연돼 있다. 사실 교수들이 당연시하는 부정행위들이 많다. 황 교수 사건보다 스케일이 작다 뿐이지 부정에 대한 무감각은 덜하지 않다.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잡지를 등재하거나 대학을 평가할 때 '실적 부풀리기'가 벌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수사회의 성찰과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

사회=교육 문제는 국민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정 총장께서는 고교 비평준화 소신을 여러 번 밝히기도 했다.

정=교육에선 평등과 수월성의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다. 원칙을 말하자면 출발 단계에선 평등한 교육 기회를 주되, 그 성과는 수월성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계층 간 이동을 위해 평준화를 반대한다. 지금처럼 18살에 한 번 평가받는 것으로 미래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 고교 입시가 있다면 좀 어려운 가정에서도 전면적 지원을 통해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고교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런 지원을 고교 3학년 때까지 이어가려면 너무 큰 부담이 돼 부자들에게만 유리하다.

백=나는 수월성이란 말보다는 본래 우리말에 있는 탁월성이란 용어를 쓰고 싶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 교육 목표인 것은 맞다. 문제는 뭐가 진짜 탁월함이냐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시험 잘 봐 좋은 점수 받는 것이 탁월함이다. 대학 교육은 흔히 하는 말로 '계급장 떼고'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논의하는 능력도 키워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문 교육인데, 서울대가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가 계급장은 확실히 붙여 내보내면서 그거 떼고 얘기하는 훈련은 덜 시키기 때문 아닌가 한다. 아울러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현 시점에서 최선의 방법이 평준화 해체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18세도 못 된 15세나 12세 때 미래가 결정돼 버릴 수도 있지 않나.

사회=교육과 관련해선 두 가지 허위의식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획일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엄연히 있는 사교육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 그렇게 만들겠다는 정책적 약속이다. 이 두 가지 허위의식이 교묘히 작용하면서 우리 교육 정책까지 기묘하게 변화시켜 왔다.

백=가정환경 등 여러 면에서 불평등하게 태어나니 교육이라도 평등하게 받자는 바람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런 소망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없이, 모든 것을 억지로 획일화하며 탁월성의 추구 자체를 적대시하는 풍토다. 교육 내용을 다양화해 평등.불평등을 따질 여지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정=외국이라 해서 과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이 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교육 없애기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또 무슨 정책 하나가 잘못됐다 해서 (사교육이) 더 늘 수도 없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는 몇 가지 묘수로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 정공법은 많은 투자로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것, 학교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사회로부터 적절한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진행·정리=배영대·이나리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백낙청 편집인은

38년생. 진보 성향의 학술.문학 계간지 '창작과비평' 편집인. 올해 40주년을 맞는 창비를 창간 때부터 줄곧 앞장서 이끌어 왔다.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시민방송 이사장과 '6.15 공동선언 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 대표직도 맡고 있다.

*** 정운찬 총장은

47년생. 서울대 총장. 2002년 서울대 개혁 여론이 높은 가운데 전체 교수의 직선으로 총장에 뽑혔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케인스 이론을 주장하는 국내의 대표적 경제학자. 1976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냈다.

※下편에서는 ‘민주화 정권 13년’‘양극화 해법’등을 놓고 토론을 벌입니다.

*** 바로잡습니다

3월 6일자 5면의 '권영빈의 세상담론'기사 중 좌담에 참석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소개하는 프로필 가운데 "케인스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경제학자"란 구절이 있습니다. 마치 정 총장이 한국 경제학계에 처음으로 케인스 이론을 소개한 것 같은 오해를 부르는 표현입니다. 케인스 이론의 장단점에 대해선 정 총장의 스승인 조순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해 많은 석학들이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정 총장에 대한 프로필을 "케인스 이론을 주장하는 국내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바로잡습니다. 또 프로필엔 정 총장이 1976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낸 것으로 되어 있으나, 76년부터 78년까지 재직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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