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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골프 이해찬 총리 "대단히 죄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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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해찬(얼굴)총리는 5일 '3.1절 골프 파문'에 대해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린 점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이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저녁 이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로 '내일 아침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본인의 거취 문제는 아프리카 순방(6~14일) 후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순방을 다녀와서 보자"고만 언급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리가 전화 통화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은 아니다"며 "사퇴를 포함한 본인의 거취 문제를 순방 이후 노 대통령에게 의논드리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이 총리의 발언 중 거취 표명은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노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 이후 민심의 동향과 여론 등을 고려해 다음주 후반께 결론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은 최대한 빨리 이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여 사퇴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훈 기자

[뉴스 분석] 등 돌린 여당 … 권력 재편 가능성
열린우리 의원들 "사퇴 말릴 생각 없다"
노 대통령 국정운영에도 영향 미칠 듯

이해찬 총리는 실세 총리다. 그 힘을 실어준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국정을 나눠 맡는,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이 총리가 국회에서 야당의원과 맞고함을 지를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노 대통령의 신임 덕분이다.

그런 이 총리가 위기다. 3.1절 골프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 총리는 5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를 사의 표명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총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임을 감안할 때 과거 같았으면 바로 사의를 반려했을 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무엇보다 여론이 나쁘기 때문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도 고려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사건 발생 뒤 이 총리의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시간이 지나며 이 같은 분위기를 여당까지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이 총리의 자숙을 요구했다. 정 의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이 총리 거취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이 총리가)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단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총리 사퇴 쪽에 무게를 두는 인상이다.

의원들도 가세했다. 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오늘 어떤 식으로든 총리의 거취와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면 사퇴를 촉구하는 당내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될 뻔했다"고 당내 기류를 전했다. 중간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도 "당 입장이 곤란했는데 잘됐다. (사퇴한다면)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총리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는 인사는 대부분 정 의장과 가까운 의원들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여권 내 권력관리 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부르고 있다.

총리 사퇴론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 문제는 대통령 임기 후반 국정 운영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아직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고민은 이 총리 거취 문제가 임기 후반 자신의 국정운영 구상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 조각 때 고건씨를 총리로 지명하며 '개혁 대통령과 안정 총리' 관계라고 설명했었다. 이후 이 총리를 기용하면서 이런 구도는 바뀌었다. 여권 고위 인사는 "노 대통령은 고 총리형 인사가 실패하자 정반대 성향의 이해찬 의원을 발탁했다"며 "최소한 올 연말까지는 이 총리 중심으로 남은 개혁 과제 추진에 나선 뒤 임기 말에 안정 총리를 내세운다는 게 당초 대통령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총리 교체는 이 같은 구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반면 당은 사정이 다르다. 여당 내부 기류는 이 총리 거취 문제가 시간을 끌수록 수습에 애를 먹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또 정 의장이 이끄는 당은 당정 관계에서 이번 기회에 총리에게 주어졌던 정무 기능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려 할 것이다. 당장 5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당은 표의 논리를 앞세워 당 주도의 판짜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과 당의 선거 논리가 충돌할 경우 이 총리 거취 문제는 자칫 여권 내 파워게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대통령과 총리, 여당 의장 등으로 대표되는'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서로의 요구를 강요하는 상황이 온다면 갈등의 폭과 깊이는 심각해질 수 있다. 이 총리 거취의 열쇠가 여권 내부로 옮겨왔다는 건 이처럼 복잡한 상황을 담고 있다.

결론은 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말해 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6~14일)에 '총리 거취'라는 골치 아픈 숙제를 동반하게 됐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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