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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목 100% 서술·논술형 시험보는 충북 삼성중의 혁신 실험

중앙일보

입력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중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에서 논술형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중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에서 논술형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면 삼성중학교. 2학기 기말고사 첫 날을 맞아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학교 답안지는 특별했다. 객관식 문제가 없이 각종 질문에 자유롭게 답안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답안지는 일반 대학생들이 쓰는 시험지(B4용지)와 크기가 비슷했다. 3학년 과학과목 문제에 ‘PTC 용액에 따른 미맹(味盲) 반응과 혈액형 가계도’를 보여준 뒤 유전 형질을 추리하는 세부 질문이 나왔다. 학생들은 답안지에 멘델의 유전법칙 등을 예로 들며 꼼꼼히 답을 서술했다.

영어·예체능 제외한 모든 과목 서·논술형 시험방식 도입 #학생들 "답 달달 외우는 시험준비 NO"…시험대비 글쓰기 연습 #문제 풀이 과정 옳으면 부분점수 적용…학습 의욕 높아져

삼성중 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마구잡이 ‘찍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 학교는 예체능과 영어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교과의 시험문제를 100% 서술·논술형으로 출제하고 있다. 답만 찾아내는 기존의 객관식 위주의 시험 형식을 탈피해 학생들의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 논리력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100% 서술·논술형 문제로 시험을 보는 과목은 국어·도덕·사회·역사·수학·과학 등 6개 과목이다. 과목 별로 3∼8개 문항이 출제된다. 영어는 서술·논술형 문제와 객관식 문제 비율이 각 50%씩 차지한다. 영어시험 논술은 다른 과목보다 적용이 어렵고, 기초학력미달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음악·미술·체육·기술가정 과목은 지필평가를 없애고 수행평가로 점수를 매긴다.

2017년 2학기 중간고사 때 삼성중에서 낸 서술 논술형 시험 문제. 최종권 기자

2017년 2학기 중간고사 때 삼성중에서 낸 서술 논술형 시험 문제. 최종권 기자

이 학교가 100% 서술·논술형 문제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학기 중간고사부터다.
유성부 삼성중 교감은 “아이들이 답만 찾는 획일적인 시험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서술형 시험 비율을 늘렸다”며 “자신이 이해하고 아는만큼 서술하면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어 학습의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객관식 시험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학교측은 설문을 받아 ‘부족한 답안지를 A4→B4 용지로 크게 해달라’, ‘채점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 ‘시간을 더 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학생들 의견을 반영했다. 삼성중은 학생들이 100% 서술·논술형 문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과목당 시험시간을 45분에서 50분으로 늘렸다.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은 다시 시간을 줄여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 45분 동안 치른다. 답안지 크기도 크게 했다.

교사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았다. 서술형의 경우 전반적인 이해도를 측정하는 문제가 주류여서 난도가 객관식 시험보다는 높은 편이다. 정경욱(31) 수학 교사는 “첫 시험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4번에 걸쳐 서술형 시험을 내다보니 학생들 수준을 고려하는 노하우가 생겼다”며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 위주로 출제를 하기 때문에 수업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정 교사는 이어 “문제 수가 줄어 부담이 줄었다는 의견도 있다”며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파악할 수 있어 개별 학업수준을 판단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중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 시험을 보고 있다. 최종권 기자

18일 오전 충북 음성군 삼성중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 시험을 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삼성중은 서술·논술형 시험 확대에 따라 평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채점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답안지 채점 과정에 타 학교 교사가 과목별 1~2명씩 외부위원으로 참여한다. 삼성중 교사들은 교과협의회를 구성, 시험문제가 잘못된 게 없는지 의견을 나눈다.

시험이 바뀌니 수업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교사들은 서술·논술형 시험에 대비해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쓰게 하고 그 내용을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학부모가 소상히 알 수 있도록 올해 1학기 말부터 학생 개개인의 성장 기록부와 성적표, 학부모께 드리는 편지를 함께 보낸다. 성장 기록부에는 학생의 장점과 개선할 점, 부족한 점 등이 자세히 담긴다.

3학년 김주은(15)양은 “시험 전날 밤을 새서 답만 외우던 방식에서 친구들과 토의하고 답안지를 미리 써보는 등 시험 준비 방법이 바뀌었다”며 “아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어떤 공부를 하든 나만의 시각을 갖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 전경. [사진 충북교육청]

충북교육청 전경. [사진 충북교육청]

삼성중의 100% 서술·논술형 시험은 ‘민주적 학교문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행복씨앗학교'(충북혁신학교)의 올해 성과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이 학교는 올해 충북교육청으로부터 행복씨앗학교로 지정됐다. 김병우 충북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행복씨앗학교는 2015년 도입됐다.
음성=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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