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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받다 보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2호 29면

삶과 믿음

12월이 되니 보험공단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올해 위, 대장내시경 검사 대상자이니 ‘12월 안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었다. 국가가 나의 건강까지 염려한다는 게 새삼 고맙기도 하다.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나는 20대 젊은 나이에 위산과다로 인해 소화가 잘 안되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사진을 보면 얼굴이 말랐다.
종교생활을 시작해 종립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위가 아플 틈이 없었다. 아침 5시에 기상해 좌선부터 운동·청소·식사 그리고 학교 수업, 서클활동이 이어졌다. 그 밖에도 종교행사 등등 방학이 되어도 내가 빠져나갈 틈이 없게 일정이 꼼꼼히 짜여 있었다.

뜨거운 한여름에 도보 200리 성지 순례 행진과 학년별 등산도 했다. 설악산·지리산·월출산·미륵산 등을 올랐다. 기숙사의 식당 밥이 아무리 잘 나와도 나는 항상 배가 고팠고 영양이 부족한 듯했다.

우리 대학시절에는 공비생(公費生)과 사비생(私費生)이 있었다. 공비생은 교단에서 2년 정도 간사생활(심부름)을 한 사람이라서, 식비를 면제해 주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종립 원불교학과에 들어온 사비생은 식비를 내야 했다. 공비생이나 사비생이나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녁 9시가 되면 전 학년 남학생들은 복도에 앉아 염불하고 그날그날 공부에 대한 감상담을 발표했다. 잠자리 들기 전엔 과제물 관리를 해야 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좌선을 필히 나가야 하기에 대각전(큰 마루강당)에 가서 꾸벅꾸벅 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하고 발령을 받아도 ‘새끼 교무’ 취급 받기가 예사였다. 10년이 지나 목탁소리가 낭랑할 즈음이 돼서야 비로소 설교와 각종 행사를 진행하는 교무가 된다.

그런 생활이 어언 30년 흘렀다. 거울을 보니 흰머리가 서릿발처럼 내렸다. 가만히 있던 몸들도 조금씩 틀어지고 고장도 났다. 몸 구석에는 정상이 아닌 수치가 나오기도 한다. 건강검진을 통해 은근히 생로병사를 겪고 있는 내 자신을 최근 발견하게 됐다.

얼마 전 ‘위내시경 결과가 그리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진료의뢰서를 받고 모 대학병원에서 추가검진을 받기도 했다. ‘자동차도 10년 넘으면 골골하는데 이렇게 60년을 써 먹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채근담』에 이런 글이 있다. “완전하기만을 바라지 말라. 불교에서 말하는 수연(隨緣·인연을 따름)과 유가에서 말하는 소위(素位·본분을 따름), 이 네 글자는 바로 바다를 건너는 부낭(浮囊·구명대)과 같다. 대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아득히 멀어서, 한결같은 생각으로 완전한 것만을 구한다면 만 가지 잡념의 실마리가 어지럽게 일어나게 되나니…”

정은광 교무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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