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10%의 기적 … 몸 밖에 심장 나온 아기 3번 수술해 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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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임신 9주째 초음파 영상에서 아이의 심장이 몸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권고받았지만 출산한 윌킨스 부부가 딸 베넬로페를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임신 9주째 초음파 영상에서 아이의 심장이 몸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권고받았지만 출산한 윌킨스 부부가 딸 베넬로페를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심장을 몸 바깥에 지닌채 태어난 아이가 영국에서 세 차례 수술 뒤 생존이 확실시되면서 영국 사회가 흥분하고 있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낙태를 권유받았지만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들은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감격해하고 있다.

영국 부부, 임신 9주째에 기형 알아 #낙태 권유 뿌리치고 지난달 출산 #의료진 50명이 심장 제자리 찾아줘 #신생아 100만 중 5~8명 꼴 희소병

13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베넬로페 호프 윌킨스는 지난달 22일 레스터지역 글랜필드 병원에서 태어났다. 베넬로페의 부모는 임신 9주째 초음파 검사를 받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베넬로페의 심장과 위 일부가 몸 외부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나오미 핀들레이(31)와 아빠 딘 윌킨스(43)는 병원으로부터 낙태하는 게 유일한 방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신생아 100만 명당 5~8명꼴로 발견되는 희소병인데, 생존율이 10% 미만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모는 낙태를 거부하고 아이를 낳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출산 예정일이었던 베넬로페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일찍 태어났다. 의료진은 출생 후 10분이 아이가 숨을 쉴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핀들레이는 “베넬로페가 태어난 뒤 우는 것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딘은 “20분이 흘렀을 때까지 아이가 계속 우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임신 9주째 초음파 영상에서 아이의 심장이 몸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권고받았지만 출산한 윌킨스 부부가 딸 베넬로페를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임신 9주째 초음파 영상에서 아이의 심장이 몸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낙태를 권고받았지만 출산한 윌킨스 부부가 딸 베넬로페를 돌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넬로페의 수술을 준비해온 의료진 50여 명은 태어나자마자 1시간여의 긴급 수술을 진행했고, 그의 몸을 멸균 비닐로 감쌌다. 일주일 후 가슴을 열고 심장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등의 수술이 이뤄졌다. 베넬로페는 흉골이 없기 때문에 인공 뼈를 만들고 겨드랑이 쪽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신생아가 감당하기엔 힘든 수술이었지만, 베넬로페는 지금까지 잘 견뎌내고 있다.

이후 수술 경과를 봐야 하지만 베넬로페는 영국에서 해당 질병을 앓고 태어난 아이 중 최초로 성공적 수술을 받은 환자로 분류됐다.

핀들레이는 “아이가 지금 병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한때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내가 죄스럽게 느껴진다”며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게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딘은 “몇 차례 희망을 잃어버렸었다”며 “아이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 중 움직인 때가 있었는지를 간호사 등에게 묻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이가 갑자기 움직인다”며 “내 말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베넬로페를 본따 딸의 이름을 지은 딘은 “영화 속 베넬로페는 워낙 완고하지만, 나중에 공주로 변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많은 임산부들이 여전히 낙태를 고민하고 있겠지만 거기를 빠져나오면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베넬로페는 추가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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