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몸 바깥에 지닌채 태어난 아이가 영국에서 세 차례 수술 뒤 생존이 확실시되면서 영국 사회가 흥분하고 있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낙태를 권유받았지만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들은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감격해하고 있다.
영국 부부, 임신 9주째에 기형 알아 #낙태 권유 뿌리치고 지난달 출산 #의료진 50명이 심장 제자리 찾아줘 #신생아 100만 중 5~8명 꼴 희소병
13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베넬로페 호프 윌킨스는 지난달 22일 레스터지역 글랜필드 병원에서 태어났다. 베넬로페의 부모는 임신 9주째 초음파 검사를 받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베넬로페의 심장과 위 일부가 몸 외부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나오미 핀들레이(31)와 아빠 딘 윌킨스(43)는 병원으로부터 낙태하는 게 유일한 방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신생아 100만 명당 5~8명꼴로 발견되는 희소병인데, 생존율이 10% 미만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모는 낙태를 거부하고 아이를 낳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출산 예정일이었던 베넬로페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일찍 태어났다. 의료진은 출생 후 10분이 아이가 숨을 쉴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핀들레이는 “베넬로페가 태어난 뒤 우는 것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딘은 “20분이 흘렀을 때까지 아이가 계속 우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베넬로페의 수술을 준비해온 의료진 50여 명은 태어나자마자 1시간여의 긴급 수술을 진행했고, 그의 몸을 멸균 비닐로 감쌌다. 일주일 후 가슴을 열고 심장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등의 수술이 이뤄졌다. 베넬로페는 흉골이 없기 때문에 인공 뼈를 만들고 겨드랑이 쪽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신생아가 감당하기엔 힘든 수술이었지만, 베넬로페는 지금까지 잘 견뎌내고 있다.
이후 수술 경과를 봐야 하지만 베넬로페는 영국에서 해당 질병을 앓고 태어난 아이 중 최초로 성공적 수술을 받은 환자로 분류됐다.
핀들레이는 “아이가 지금 병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한때 포기할까도 생각했던 내가 죄스럽게 느껴진다”며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게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딘은 “몇 차례 희망을 잃어버렸었다”며 “아이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 중 움직인 때가 있었는지를 간호사 등에게 묻곤 하는데, 그럴 때면 아이가 갑자기 움직인다”며 “내 말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즈니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베넬로페를 본따 딸의 이름을 지은 딘은 “영화 속 베넬로페는 워낙 완고하지만, 나중에 공주로 변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많은 임산부들이 여전히 낙태를 고민하고 있겠지만 거기를 빠져나오면 희망이 있다”고 덧붙였다. 베넬로페는 추가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