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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틸러슨 "무조건 대화"는 단독 행동? …"북 응답 떠보는 풍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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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중앙포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을 향해 “무조건 대화” 제안을 한 지 하루 만인 1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대북정책 혼선이 또다시 노출된 셈이다. 틸러슨 장관의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 조건 없이 첫 만남을 갖겠다”는 공개 초대가 단순 해프닝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하루 넘게 침묵하고, 14일 틸러슨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비공개 오찬을 하기로 하면서 기존 ‘최대한 압박’에 대화를 병행할지 대북정책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백악관 "지금 당장은 대화할 때 아니다" 하루 만에 제동 #트럼프는 침묵, 14일 틸러슨·매티스 오찬서 조율할 듯

美 NSC “최근 화성-15형 발사…지금 당장은 대화할 때 아니다”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는 “북한의 가장 최근 미사일(화성-15형) 시험발사를 고려하면 지금 당장은 분명히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NSC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의 제안을 승인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거절하는 대신 “정부는 북한 정권이 근본적으로 행동을 개선할 때까진 북한과 협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행동 변화엔 틸러슨 장관이 말했듯 핵미사일 추가 시험 중단도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틸러슨 장관이 전날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주최 공개 토론회에서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전제조건 없이 첫 만남을 가질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한 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전날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틸러슨 장관의 제안이 나온 지 1시간여 만에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 것보다 더 부정적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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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 조건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AP=연합]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 조건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AP=연합]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백악관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화에 아무 전제조건이 없는 거냐면 대답은 노(No)”라며 “지금 당장은 대화할 때가 분명 아니다”고 NSC 입장을 반복했다.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고, 핵실험을 하는 상대에게선 대화할 어떤 종류의 관심이나 진지함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다. 노어트 대변인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신뢰할 만한 대화를 할 의사를 보일 때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외교가 최우선이며 최대한 압박, 평화적 압박이란 우리 정책은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틸러슨의 단독 행동…'압박''대화' 조율된 역할 분담 해석 엇갈려  

백악관의 부정적 반응에 틸러슨 장관의 독단적인 파격 제안인지, 트럼프 대통령과 승인 또는 묵인을 받고 이뤄진 의도된 역할 분담인지에 대한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국무부 직원들까지도 하루종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만 쳐다보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이날 밤까지 앨라배마 보궐선거 패배와 백악관을 사임하는 오랜 측근에 대한 감사 인사말만 올라왔을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틸러슨의 단독 행동 쪽에 무게를 실었다. NYT는 “백악관 관리들은 틸러슨 장관의 제안이 최대한 대북 압박에 동참한 동맹국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경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이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갈등은 백악관이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국무장관 교체를 추진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시점에 벌어졌다”고도 지적했다.
반면 워싱턴 고위 외교 소식통은 “국무장관이 대통령과 조율 없이 큰 제안을 하진 않는다”며 “구체적인 방법론은 몰라도 대북 대화도 시도하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틸러슨 장관의 제안도 큰 틀에서 압박을 통한 대화를 추진하자는 기존 정책 안에 있다”면서도 “다만 비핵화 전제조건을 없애고, 시점도 언제든 북한이 원하면 대화할 수 있다고 연 것은 한국 관계자들이 많은 토론회에서 의욕을 보인 것 같다”고 전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조너선 폴락 선임연구원은 중앙일보에 “틸러슨 장관의 제안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시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최대한의 유연성을 보여주며 북한의 반응을 알아보려는 ‘시험 풍선(Trial Balloon)’을 띄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양에 이 같은 대화 제의에 응답하지 않거나 추가 도발을 할 경우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한 방향으로 변할 것이란 분명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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