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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기 끊겠다”던 전 민노총 위원장, 폴리텍대학 이사장 시킨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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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고용노동부가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 이석행(사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선임키로 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고용부는 최근 폴리텍대학에 “19일 이사회를 열고 이 전 위원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한다. 이에 맞춰 이·취임식을 준비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앞서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이 전 위원장의 이사장 임용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집단 반발했다.

현장에서 #이석행 전 위원장, 지금은 여당 당직 #교수협의회는 임용반대 집단 반발 #하이테크 기술자 배출하는 곳에 #교육행정 경험없는 ‘낙하산’ 내보내

이 전 위원장은 대동중공업 노조위원장을 거쳐 2007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는 등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었다. 그는 2008년 불법 총파업과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받을 당시 그의 도피를 지휘하던 간부가 은신처를 제공한 여성 조합원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드러나 이듬해 물러났다.

이석행

이석행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철도를 멈추고, 전기를 끊는 제대로 된 총파업으로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했다. 사실상 노동운동가로서의 경력만 있을 뿐 교육행정과는 무관한 셈이다. 그는 2010년 송영길 인천시장이 당선되자 인천시 노동특보로 임명돼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원 동기와 관련 “국가 자격증도 갖고 있어 이사장에 지원했다. 나는 정밀가공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전국 34개 캠퍼스와 2곳의 교육원, 고교 1곳의 경영을 총괄하고 학과 증설과 개편, 대학 발전전략 등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10월 중순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는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에서 이 전 위원장의 자격을 놓고 위원 간에 격론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결국 당시 이 전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하는 것으로 봉합했다. 이전까지는 최종 후보로 3명을 선정했다. 후보 인원을 늘리는 꼼수를 쓴 셈이다. 5명 가운데 이 전 위원장을 제외하곤 모두 학계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가 지난달 15일 임용반대 성명서를 낼 때 1200여 명의 교수가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 캠퍼스의 모 교수는 “대학까지 자리 배분용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라며 “채용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정부에 의한 기관장 채용 비리”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폴리텍대학 관계자는 “최종 후보자 가운데는 실무능력을 겸비한 산업기술 관련 교수와 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학장을 지낸 여성 학자도 있었다”며 “정부가 공언한 직무 중심, 여성 기관장 확충 등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1일 고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폴리텍대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하이테크 기술자를 배출하는 등 역할이 중대하다. 이런 대학의 기관장은 대학을 알고, 교육연구를 해본 사람이 맡아야 한다”며 이 전 위원장 내정에 대한 질타가 나왔다. 당시 김영주 고용부장관은 “이사장은 수업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처럼 반발이 거세자 현 이사장의 임기가 만료(10월27일)된 뒤에도 고용부는 이사회를 열지 않았다. “시간을 끌며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선임을 강행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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