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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세무사법 10년 전쟁…국회 문턱 어떻게 넘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가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세무사법 조항(3조3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놓고 국회에선 10년간 전쟁을 벌였다. 2007년 10월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현 더불어민주당)이 첫 발의한 개정안은 이듬해 17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18대,19대 국회 때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함께 주는 것은 직역 이기주의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로 세무 관련 법 사안도 동일하게 다룰 수 있다. 범위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돌이표처럼 맞섰고 매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세무사법 개정안이 10년 2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이상민 의원이 4번째 다시 발의한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수 247인에 찬성 215인, 반대 9인, 기권 23인으로 통과됐다.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은 한국당 17명, 민주당 8명, 국민의당 6명, 대한애국당 1명 순이었다.
율사 출신 의원들의 투표는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과 자유한국당 권성동, 주광덕 의원 등은 찬성했다. 반면 한국당 김진태, 주호영 의원 등은 반대를, 법무법인 부산 출신의 민주당 김해영 의원과 한국당 곽상도, 김정훈 의원 등은 기권했다.

주호영 의원은 “모든 직역들 간에 싸움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과 경대수 한국당 의원은 기권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찬성 투표를 한 이유에 대해 “세무사 자격 부여를 폐지한다고 해서 변호사들에 특별히 불이익이 간다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세무사와 변호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통과된 세무사법 개정안은 세무사 자격이 있는 자의 범위를 규정한 제3조(세무사의 자격)에서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다.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들만 세무사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창규 한국세무사회 회장 등 세무사들과 관계자들은 이날 개정안 통과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은 통과되자 서로 악수하며 손을 맞잡고 기뻐하기도했다(사진 아래). 하지만 변호사업계는 이날 ‘무한투쟁’을 선언하며 삭발식 등 고강도 투쟁에 나섰다.오후 국회 앞에서 김현 변협 협회장(오른쪽 두번째) 등 대한변협 간부들이 세무사법 개정안에 반대, 삭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위).20171208.조문규 기자

변호사의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세무사와 변호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통과된 세무사법 개정안은 세무사 자격이 있는 자의 범위를 규정한 제3조(세무사의 자격)에서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다.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들만 세무사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이창규 한국세무사회 회장 등 세무사들과 관계자들은 이날 개정안 통과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은 통과되자 서로 악수하며 손을 맞잡고 기뻐하기도했다(사진 아래). 하지만 변호사업계는 이날 ‘무한투쟁’을 선언하며 삭발식 등 고강도 투쟁에 나섰다.오후 국회 앞에서 김현 변협 협회장(오른쪽 두번째) 등 대한변협 간부들이 세무사법 개정안에 반대, 삭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 위).20171208.조문규 기자

10년 만에 세무사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것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한국당 조경태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세무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조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어떻게 이 법이 10년 동안 통과가 안 됐는지 내가 역으로 묻고 싶다. 변호사가 전문성 있는 시험도 거치지 않고 세무사 자격증을 가진다는 것이 상식적이냐”고 되물었다. 조 의원은 “상임위 통과시킨 법안이 법사위에서 논의되는 게 절차적 민주주의”라고도 했다. 민주당에서 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조 의원은 한국당 내에서 ‘소신파’로 분류된다. 1차 ‘허들’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법사위가 안건을 틀어쥐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까지 하면서 정 의장의 개정안 직권상정에 결과적으로 힘을 실었다.

세무사법 개정안에 대한 첫 법사위 심사는 올 2월24일 열렸지만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법사위에서 또 정체됐다. 물꼬가 트인 건 11월22일 정세균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였다. 정 원내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법사위에서 한 번 더 심사를 하고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본회의에 바로 상정하는 것에 동의하기로 합의해줬다”고 말했다. 국회선진화법은 법사위가 120일 이내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원내대표와 합의를 거쳐 본회의에 법안을 부의할 수 있도록 돼 있다.(국회법 86조) 정 원내대표가 법사위 재심의를 조건으로 본회의 회부에 사실상 동의한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동의한 상태였다. 정 원내대표는 “정 의장이 지난 1년동안 법사위에 계류된 게 34건이나 있다고 했다. 국민의 눈높이가 벌써 변호사와 세무사의 직역을 나누는 게 맞다고 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게 옳은 건지 상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11월28일 열린 법사위 2차 심의가 무산되자 정 의장은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 직권으로 법안을 상정했다. 이를 두고 한국당이 예산안 처리와 원내대표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세무사법 개정안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굳이 당론을 모을 필요가 없는 사안이었다. 그동안 한국당이 반대를 해온 것도 아니다”라며 의원들은 개별 소신으로 접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세균 의장이 세무사법 개정안을 ‘법사위 패싱’ 1호로 추진한 것을 두고 명분과 전략이 절묘하게 결합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세무사법은 법사위에서 통과가 안 되면 법조인들이 제 밥그릇 챙긴다는 부정적 여론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장이 직접 상정시키기에 가장 명분이 있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일부 법사위원들이 “법사위를 건너뛰어 바로 본회의로 간다면 법사위가 왜 필요한가”(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의장이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법을 넘겨줘선 안 된다”(오신환 바른정당 의원)고 반발했으나 정 의장은 세무사법 개정안이 이를 봉합할 수 있다고 보고 밀어붙인 것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에 따르면 정 의장은 교육문화관광체육위에서 올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기재위가 올린 ‘세무사법’ 2가지에 대해 법사위가 지연시킬 경우 직권상정할 수 있도록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한편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로 변호사와 세무사만이 아닌 변리사 등 다른 직역과의 법적 갈등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행 변리사법에 따르면 변호사가 되면 변리사 자격도 자동 취득된다. 2015년 변리사법 개정으로 실무 연수를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엄격해졌지만 별도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다. 때문에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과 마찬가지라면 변리사법 개정도 가능할 수 있다.

박성훈ㆍ김록환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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