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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둠을 만들고, 부분이 곧 전체 … 철·학·하·는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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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① 쌀겨를 넣은 일본식 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969년 작 ‘프리 폼 체어’.
② 우치다가 미래의 디자인을 생각하며 중요하게 내세운 개념 ''프래그먼트''를 적용한 2001년 작 ‘프래그먼트 B’.

삼각 김밥 모양을 닮았다. 큰 모래 주머니 처럼도 보인다. 일본 디자이너 우치다 시게루(63.內田 繁)를 세계에 알린 의자 '프리 폼 체어(Free Form Chair)'다. 우치다는 쌀겨를 넣은 일본식 베개를 키워 의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체에 반응해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는 의자, 변화를 전제로 한 자유를 표현한 의자는 머리의 움직임 따라 이리저리 파이던 쌀겨 베개에서 왔다.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 애크미사의 컬렉션에 아시아인 최초(두 번째 가입한 이는 한국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로 이름을 올린 디자이너 우치다의 명성은 베갯머리에서 시작된 셈이다.

우치다의 디자인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일본 전통 다실(茶室)을 현대화한 모지코 호텔의 작은 다실 풍경.

'우치다 시게루 디자인 전'(3~23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은 1969년 작 '프리 폼 체어'부터 2000년 작 '프래그먼트(Fragment)'까지 우치다의 디자인 세상 30년을 들여다보게 한다. 디자인과 문화인류학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지역과 민족은 중요하다. 디자인 평론가들이 우치다의 디자인을 '지극히 일본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우치다의 감각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닮았다. 눈에 보이는 특징으로 수평 선반, 계단, 형태나 소재가 튀지 않는 공간을 들 수 있다면 그 본질은 일본말로 '우쓰'다. '우쓰'를 우리말로 풀면 공허 또는 무(無)다. 우치다는 디자인을"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언가를 넣음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 푼다. 공간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형태나 색이 그곳에 배치되는 사물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치다의 가구에 가는 선(線)이 많이 드러나는 것도 일본 공간 감각의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인이 귀하게 여기는 다실(茶室)은 자신을 비우고 낮출 수 있는 작고 텅 비어 있는 맑은 공간이다. 우치다는 자신이 꿈꾸는 가구를 "(다실처럼) 투명하면서도 선명하고 무게감은 없는, 존재감을 초월하는"이라고 표현한다.

조명 역시 일본의 전통을 따른다. 우치다에게 조명은 빛을 밝히는 물건이 아니라 공간 속에 어둠을 만드는 도구다. 색도 외부에서 붙인 색이 아니라 가구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토착적인 색을 추구한다.

우치다가 지금 사로잡힌 디자인 개념은 '프래그먼트'다. 부분이지만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서로 융합하면 커다란 전체가 되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 프래그먼트다. 그의 2001년 '프래그먼트'는 조각을 내면 혼자 쓰는 조그마한 의자가 됐다가 이리저리 붙이면 큼직한 대형 소파가 된다. 그는 "사물은 모두 서로 함께 공존해 나가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고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자유자재로 융화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설명한다. 텅 비어 있는 공간에 수많은 프래그먼트를 배치함으로써 시간을 만드는 '일본의 공간'을 현대로 끌어오는 것이 그의 디자인 태도다. 우치다가 자신의 디자인 얘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쓴 '가구의 책'(미메시스 펴냄)도 함께 나왔다. 02-720-102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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