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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먼지 속에서 건진 우리 고전영화 다시 스크린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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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의 부잣집에 시집가 남부럽지 않게 사는 애순(문예봉). 그러나 남편의 억압 속에서 항상 '새장 속의 새'처럼 갑갑함을 느낀다. 급기야 백화점에서 의도적으로 접근해온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애순은 그 남자에게 의탁해 새 인생을 시작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자는 결국 강도로 밝혀지고, 애순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영화 미몽(1936년.감독 양주남.사진)의 줄거리다.

한국영상자료원(www.koreafilm.or.kr)이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중국전영자료관에서 찾아낸 필름이다. 초창기 한국 영화를 연구하는 데는 물론 30년대 서울의 모습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귀한 사료다. 지난달 28일 상영회에서 확인한 결과 필름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고 몇몇 장면은 아예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영화를 보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영상자료원은 이 작품 외에도 '반도의 봄'(41년.감독 이병일)과 '조선해협'(43년.감독 박기채) 등 두 편의 영화를 더 찾아내 국내로 들여왔다. 이로써 영상자료원은 일제시대에 제작된 한국 극영화 69편(무성영화 제외) 중 11편의 필름을 확보하게 됐다.

'미몽'은 특히 30년대 근대 여성의 자의식을 그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70년 전 영화라는 한계는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가부장적 분위기의 집안을 '새장'에 비유하고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등 나름대로 실험정신이 느껴진다. 광복 전 조선 최대의 인기 여배우였던 문예봉의 데뷔 초 모습이 볼 만하다.

영상자료원은 2일부터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고전영화 발굴공개전을 연다. '미몽' 등 일제시대 영화 7편과 '해방뉴쓰'라는 다큐멘터리 4편이 상영된다. 관람료는 회당 2000원.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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