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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논술가이드라인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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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교육 전문가들이 지난달 24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논술가이드라인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박광민 교수, 김완진 교수, 이현청 사무총장, 강영안 교수, 김화진 국장. [안성식 기자]

▶이현청(사회)=논술가이드라인은 필요한 정책인가.

▶김화진=지금까지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높여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걸 잘하는 게 사교육이라고 믿고 의존해 왔다. 학생들은 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선 졸았다. 현 정부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마련한 방안이 수능과 내신성적 위주로 학생을 뽑는 2008학년도 입시제도다. 그러나 논술고사가 본고사 형태로 변질되면 계속 사교육이 판치게 된다. 그래서 논술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다.

▶김완진=가이드라인까지 정해 대학을 규제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궁극적으론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 대학마다 논술에 대한 생각이 다른데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 규제하는 것은 우수 인재를 뽑으려는 대학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입시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강영안=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특수 사정이라고 본다. 논술은 단순하게 보면 제시문을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그걸 토대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대학들은 '수리논술' 형태로 사실상 수학 문제이거나 수학 문제에 가까운 유형을 낸다. 논술 자체뿐 아니라 입시나 교육 전반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박광민=교육열을 감안할 때 학부모들은 논술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교육에 투자할 것이다. 사교육이 없어질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3불 정책은 논외로 치더라도 논술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두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에 어긋나고 대학의 자율을 해치는 행위다. 헌법 제31조 4항은 '대학의 자유는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술가이드라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는가.

▶김화진=자율성은 대학의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공익이나 사회적 필요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1993년부터 대학별 고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고교 교육의 파행을 가져올 수 있는 본고사 유형은 금지하고 있다.

▶박광민=법은 국민이 뽑은 국회에서 통과된 걸 말하는 것이지 시행령.시행규칙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고등교육법은 본고사 외의 필답고사는 허용한다고 했다. 3불 정책에 이어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다면 교육의 자율기능을 교육부가 전면 통제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화진=(논술가이드라인 규제가) 초유의 일이어서 최소한의 것만 고심해 판정한 것이다. 그걸 마치 대학별 고사 전체를 금지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95%는 문제가 없었고 5%만 걸린 것이다.

▶박광민=가이드라인으로 규제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이냐에 대한 의견수렴과 객관적 평가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도 거치지 않고 무 자르듯 "어겼다""안 어겼다"로 양분해 판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김완진=동감한다. 대학들은 과거의 본고사, 예컨대 단답형과 같은 문제로는 우수 학생을 뽑기도 어렵고,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강영안=(적발된 일부 대학의 문제는) 명백한 수학.국어 문제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내서는 안 된다. 서울대가 통합교과형 논술을 택한 것은 특정 교과목을 보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게 아닌가.

▶김완진=오히려 반대다. 지금까지 논술은 교과목과 무관했다. 역사.철학이나 상식적인 주제에 대해 쓴 글을 평가했다. 대학 입장에선 좀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인재를 뽑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 본고사와는 전혀 다르다.

▶강영안=논술을 여러 번 출제하고 채점했다. 개인적으론 좁은 의미(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쓰기)의 논술이 논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수준의 문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 대학은 특정 지식이나 문제풀이 과정을 묻는 본고사형 문제를 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본고사를 부활하라고 싸우는 게 떳떳하지 않은가.

▶박광민=대학의 중요한 기능은 글로벌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계통에선 영어 이해도, 자연계에선 수학적 사고와 능력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그러나 시대착오적이고, 시대역행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경쟁력 확보의 근간인 우수 인재 선발을 방해하고 있다.

▶김화진=미국 대학들은 본고사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대학들이 본고사를 실시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시대역행적이다. 2008학년도 수능에서 국.영.수를 다 본다. 가이드라인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논술에서) 영어와 수학시험을 다시 보지 말라는 취지다.

▶김완진=통합교과형 논술을 준비하면서 각 나라의 시험문제를 조사했다. 세상에 본고사를 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다. 미국의 고교생 대학과목 선이수(AP)제도와 대학수학능력시험(SAT II), 영국의 A레벨 시험 등은 심층적인 문제를 출제한다. AP의 경우 미국 상위권 고교생이 보는 표준시험인데, 고난도의 문제를 낸다. 지문 하나를 주고 한 시간씩 쓰게 하는 식이다. 문학에도 수학에도 다 있다. 일종의 본고사다.

▶김화진=그러나 대학에서 실시하는 게 아니다. 마치 대학에서 하는 듯 얘기하지 말라. 고교 교사들이 평가권을 갖는다.

▶김완진=대학이 주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그런 유형의 시험을 본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2008학년도 입시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통합교과형 논술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논술이란 좁은 잣대로 대학의 문제 출제 자율권마저 간섭하는 것은 큰 문제다.

▶사회=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이나 보완책은 없는가.

▶김화진=앞으로 두 축으로 간다. 하나는 논술이 본고사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행.재정적 제재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학생부(9등급)의 신뢰도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학생부가 부풀려진 것은 2학년 이상의 문제였다. 1학년 1, 2학기 성적을 분석해 본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학교 간 차이도 수능에 의해 보정된다는 걸 보여주겠다.

▶강영안=본고사를 부활하자고 싸우든지, AP처럼 상위 득점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든지, 수능 난이도를 조절하든지 상관없다. 논술은 그 자체가 '정상적인 논술'이어야 한다. 정상적인 논술은 독서 붐을 일으키고, 제대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왜 대학이 입시에만 목을 매느냐. 제대로 가르치면 된다.

▶김완진=재차 논술을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데서 탈피하자고 말하고 싶다. 정부는 2008학년도 입시안을 만들면서 수능을 없애자고 했었다. 이런 마당에 수능을 강화해 상위권 학생을 위한 주관적이고 심층적인 문제를 내자는 게 통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자구책으로 통합교과형 논술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젠 본고사란 개념을 확대해 개방할 때도 됐다.

▶김화진=지금의 정부를 선택한 건 국민이다. 이 정부가 분명하게 목표로 내놓은 게 사교육의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많은 대학이 반대했지만 확정됐다. 법률이나 정책은 법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사회세력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정부가 선택한 2008학년도 입시는 공익성을 더 중시한 것이다.

▶박광민=그래서 3불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닌가. 대학들이 불만스럽지만 따라가고 있는데 가이드라인이 또 나왔다. 완전 억압 행정이다. 5%가 걸렸다고 말했지만 그게 핵심일 땐 100%다.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1%라도 건드리면 100%를 건드리는 것이다.

▶김화진=그럼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얘기냐.

▶박광민=본고사는 금지돼 있지 않은가. 대학에서 외국어특기자 전형을 하는데 해당 외국어 능력을 보지 말라고 하는 현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강영안=논술을 통해 종합적.창의적 능력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외국어 제시문은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수학.과학 논술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풀이식 서술방식은 계속 금지해야 한다.

▶박광민=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면서 금지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또 만들었다. 이중 규제를 풀어야 한다.

▶김화진=3불 정책이 있는 한 논술가이드라인은 국.영.수 본고사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2008학년도에 논술 비중을 높여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대학이 있다. 반영비율을 높이려면 채점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정리=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